소설가 이승우 씨(왼쪽)와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이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소설가 이승우 씨(왼쪽)와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이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문학은 한 번 즐기고 끝나는 게 아니라 한 사람, 나아가 사회 전체의 사고방식을 좌우한다.”

신창재 대산문화재단 이사장(교보생명 회장)은 2012년 재단 설립 20주년을 맞아 이렇게 말했다. 1992년 재단을 설립한 부친 신용호 교보생명 명예회장(1917~2003)의 신념은 ‘교육은 곧 책이고, 책은 곧 문학’이었다. 대산문화재단이 20년 넘게 문학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쳐 온 이유다. 이 재단은 대산청소년문학상, 대산대학문학상, 대산문학상, 창작기금 지원 등을 통해 생애주기별로 작가를 육성하고, 번역·출판 지원과 국제문학교류 등으로 한국 문학 세계화에 힘써왔다.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과 1993년 제1회 대산문학상(소설 부문)을 수상한 소설가 이승우 씨(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최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의 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시인이기도 한 곽 국장은 재단의 신입 사원일 때 실무자로서 이씨에게 수상 소식을 알렸다. 수상작인 《생의 이면》은 이후 재단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곽효환 사무국장=제1회 대산문학상 통보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이승우 작가=그 이후 인연이 꾸준히 이어져 온 게 참 의미 있죠. 대산문학상을 받고 번역 지원받아 외국에 나가고 하면서 대산의 ‘은혜’를 많이 받았죠(웃음).

▷곽 국장=이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재단으로선 첫해에 이승우라는 작가를 발견한 게 큰 행운이었어요. 재단의 지향점 자체가 한국 문학의 세계화였는데, 세계에서 통하는 작품을 뽑았으니 출발이 좋았죠. 당시 이 선생님은 34세의 젊은 무명작가였는데도 작품을 프랑스에 소개하자마자 대부분의 일간지 문화면 머리기사로 비평을 실었어요. 이제는 저명한 문학상인 페미나상 최종심에 올라가고 세계 최고 수준의 출판사인 갈리마르의 세계문학총서(폴리오) 목록에도 실리는 작가가 되셨죠.

▷이 작가=《생의 이면》《식물들의 사생활》《그곳이 어디든》 같은 작품인데, 모두 대산의 번역 지원을 받은 것들이에요. 재단의 노력이 없었다면 저를 포함한 우리 문학의 이런 결실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 문학을 알리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어떻게 인식될 것이냐’를 고민하면서 알리는 방법을 생각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곽 국장=20년 전엔 외국에서 “너희도 고유의 언어로 문학을 하느냐”는 질문까지 받았어요. 지금은 한국의 주요 작가와 작품을 조금은 주목할 정도니까 많이 좋아진 거죠. 선생님 말씀대로 한 번 더 도약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재단의 주요 사업 중 하나가 한국 문학 번역 지원 사업인데, 이 사업의 목표는 역설적으로 ‘이 사업이 없어지는 것’이에요. 지원 제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소개될 수 있도록 말이죠.

▷이 작가=이런 진정성이 대산문화재단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재단, 특히 기업 출연 재단의 경우 의지는 있는데 결과가 없으면 사업을 접어버릴 수도 있고, 방향을 틀어버릴 수도 있거든요.

▷곽 국장=문화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인내심과 일관성이라고 봐요. 20년 동안 재단의 핵심 사업은 변한 적이 없습니다. 특정인, 계파에 치우친 적도 없고요. 이사장이 먼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공공의 목표를 보여주기 때문에 조직원으로서는 따라갈 수밖에 없죠. 20년간 한 번도 개인적인 부탁을 하신 적이 없고, 오히려 아는 사람이 수혜자가 될 경우엔 관련 규정을 다 갖고 올라가 이해를 시켜드려야 해요. 선생님처럼 작가들이 수혜자와 시혜자 관계가 아니라 재단을 동반자로 생각해 줄 때 가장 보람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작가=문학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대산은 문학에서 인생을 걸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요. 청소년, 대학생, 성인 작가에 이르기까지 생애 전체에 걸쳐 지원을 해주거든요. 욕심을 부리자면 그런 기회가 좀 더 많은 작가들에게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죠.

▷곽 국장=1980년대만 해도 자질이 우수한 인재들이 문학으로 들어왔는데 영상시대가 되면서 바뀌었어요. 재단에서 청소년·대학문학상을 운영하는 건 문학이 아직도 매력있는 분야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섭니다. 덕분에 김애란 고은주 같은 소설가와 극작가 김지훈 씨 등이 대산대학문학상을 통해 발굴됐죠. 창작기금을 더 넓게 지원하는 건 과제입니다. 앞으로도 문학이 사회에 뿌리내릴 때까지 지원해야죠.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