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아프리카의 숨은 영웅들
석신우 대우조선해양 앙골라법인 과장. 91학번으로 한국외국어대 포르투갈어과를 나와 남광토건에 입사,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앙골라에 배치된 게 1990년대 말이다. 이후 본사 근무 2~3년을 빼고는 계속 그곳에 머물며 앙골라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한다는 국영석유회사 소낭골(Sonangol) 사옥과 조만간 개장하는 6성급 호텔 등의 공사를 따냈다. 지난해 남광토건이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자 현지 합작조선소를 운영하는 대우조선해양으로 옮겼다. 악명 높은 현지 교통경찰도 이제 그를 보면 억지 티켓을 떼지 않고 그냥 보내줄 정도다.

오지에서 뛰는 한국인들

강현전 농어촌공사 단장은 앙골라 수도 루안다에서 280㎞ 떨어진 숨베 지역에서 7년째 관개수로 공사를 하고 있다. 33년간(1975~2008년)의 내전으로 지금도 지뢰가 나오는 5000에이커(약 610만평)의 황무지에 목화농장을 일구기 위해서다. 2006년 농어촌공사가 사업을 맡은 뒤, 1년 만에 전임자가 귀국하는 바람에 앙골라에 부임한 그는 내년 5월 완공된 땅에 목화가 하얗게 뒤덮일 날을 꿈꾼다.

강 단장은 “내 인생에 이거 하나 일구고 갈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앙골라 정부는 내심 농업기술 전수까지 원하지만, 이 오지에 그의 뒤를 이을 후임이 올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염규철 한국전력공사 나이지리아 법인장은 올해 법인장 공모에 홀로 응해 이곳에 왔다. 한전은 지난 11월 나이지리아 전력량의 38%를 생산하는 엑빈발전소 운영을 떠맡았는데, 본인이 아니면 올 사람이 없어서다. 그에게 나이지리아 근무는 두 번째다. 2007년부터 4년간 수도 아부자에서 발전소 보수 용역을 담당했던 그는 그때부터 엑빈발전소 운영을 추진해왔다. 5년간 운영비로 3억1500만달러를 받아, 1억달러 이상 수익이 예상되는 ‘알짜배기’ 사업이다. 그는 3년 임기로 왔다. 그러나 후임이 올지 의문이다. 염 법인장은 5년 뒤 이곳에서 정년을 맞을 각오를 하고 있다.

후임 없어 일본 꼴 날 판

10여일간 아프리카 현지를 취재하며 곳곳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한국인들을 만났다. 이들은 물, 전기 등 기본적인 의식주 여건마저 확보가 쉽지 않은 이곳에서 현지인들 가슴에 한국을 심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뒤를 이을 젊은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내에선 직업 없이 놀지언정 오지 아프리카에선 일하지 않겠다는 풍조 탓이다.

아프리카에서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가 일본 전자회사의 존재감이 없다는 것이다. 간혹 일부 파나소닉 에어컨만이 눈에 띌 뿐, 소니 샤프 등은 찾을 수 없다. 일본 젊은이들이 해외 발령을 받으면 회사를 그만둔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한국도 점점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게 현지 한국인들의 우려였다. 염 법인장은 “여긴 전기가 턱없이 모자라지만 기술이 없어 발전기가 고장나면 1년씩 멈춰서 있다”며 “자동차 정비 등 어떤 기술이든 배워 오면 얼마든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가끔씩 눈에 띄는 젊은 동양인은 대부분 중국인이다. 21세기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아프리카 시장은 중국인과 수백년 전부터 터를 잡은 유럽인, 인도인의 차지가 되고 있다.

우리에겐 수많은 제2, 제3의 석신우, 강현전, 염규철이 필요하다.

김현석 산업부 차장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