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연말 솔로탈출"…물 좋다고 가입한 댄스동호회
중견기업에 다니는 신 대리는 얼마 전 사내 동호회인 밴드부에 가입했다. 맡은 포지션은 키보드지만 지금껏 피아노를 한 번도 제대로 쳐 본 적이 없는 ‘초짜’다. 이런 그가 밴드부에 몸담게 된 것은 팀장의 ‘협박’ 때문이다. 대학생 때 노래패 활동에 심취했던 팀장은 사내에 밴드부를 만들기로 하고 ‘힘없는’ 부하 직원들을 반강제적으로 가입시켰다. ‘오합지졸’인 밴드부가 합주하면 ‘삑사리’가 나는 게 당연한 일.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팀장은 밴드 부원들을 만날 때마다 “연습을 똑바로 하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팀장을 볼 때마다 흠칫 놀랍니다. 팀장의 케케묵은 추억 탓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거든요.”

고된 업무와 스트레스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사내 동호회는 ‘비타민’과 같은 존재다. 스트레스를 맘껏 풀면서 사내 인맥도 넓힐 수 있어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직장인의 행복도를 높일 수 있는 6가지 방안 중 하나로 사내동호회 활동을 꼽았다. 하지만 동호회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인들도 있다.

○항공사 직원들의 럭셔리한 취미 활동

아시아나항공에 근무하는 김모 과장은 1년에 너덧 번 해외로 스킨스쿠버다이빙(수중 다이빙)을 하러 간다. 주말과 공휴일이 낀 황금연휴엔 어김없이 스킨스쿠버 장비를 싸들고 필리핀 세부, 사이판, 팔라우 등 바다가 예쁜 휴양지로 떠난다.

김 과장이 이런 ‘고급’ 취미를 갖게 된 건 사내 동아리 덕분이다. 아시아나항공에는 결성된 지 20년이 넘은 스킨스쿠버다이빙 동호회가 있다. 역사도 깊지만 회원들의 열정과 끈끈한 우정으로 사내에서 인기 동호회 1위로 꼽힌다. 김 과장도 치열한 경쟁을 뚫고 회원 자격을 얻었다.

이런 활동은 항공사 직원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항공사 직원과 가족들은 항공기 좌석이 비었을 때 항공권 값을 대폭 할인받을 수 있다. 김 과장은 “항공료가 많이 들지 않는 데다 동호회에서 단체로 숙식을 해결하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외국에서 스킨스쿠버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며 “일반 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워한다”고 했다.

○차(茶) 동호회라더니…알고 보니 술꾼 모임

중견기업 B사에서 일하는 조 과장은 사내 보이차 동호회 회원이다. 이 동호회는 보이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매주 모여 차를 음미하는 모임이다.

그런데 최근 이 동호회에 비상이 걸렸다. 회사에서 주는 동호회 지원비가 끊길 위기에 처한 것. 겉으로는 보이차 애호가들의 모임이었지만 사실상 술꾼들의 모임이라는 사실이 탄로났기 때문이다. 보이차가 음주 후 숙취 해소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조 과장과 같은 주당들이 한두 명씩 동호회에 몰려든 게 화근이었다. 보이차를 핑계로 매주 두세 차례씩 만나는 동호회원들에게 보이차는 ‘딴전’이 됐고 점차 곡차(穀茶·술)가 모임의 주된 목적이 됐다. 이들은 “다음날 보이차로 속을 풀면 되니까 많이 마셔도 된다”며 술 파티를 벌였다.

하지만 한 푼이 아쉬웠던 이 동호회는 결국 회사에서 주는 지원금을 받기 위해 ‘본연의 활동’을 해야 했다.

○‘야동’ 모임에서 맥주 한 잔

생활용품업체인 애경산업에 근무하는 이 대리는 ‘야동’ 모임의 회원이다. 밤에 몰래 보는 야한 동영상이 아니라 ‘야근 동호회’의 줄임말이다.

이 모임은 2년 전 ‘자주 야근하는 사람들끼리 맥주나 한 잔 하고 갑시다’라는 누군가의 제안에 의해 시작됐다. 사내 메신저로 ‘오늘 야동모임 있습니다’라고 하면 원하는 사람들끼리 일을 마치고 가볍게 맥주 한 잔 하고 가는 식이다. 정식 동호회는 아니고 그때그때 합류하는 번개 모임 방식으로 운영되지만 나름대로 고정 멤버가 있고 참여도도 높다. “평소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사람들끼리 밤에 모여 맥주를 한 잔씩 하다보니 부쩍 친밀해지더라고요.”

○동호회에서 ‘헌팅’하고 ‘힐링’하고

대기업 C사에 다니는 강모 대리(여)는 얼마 전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이별의 아픔에 괴로워하던 강 대리에게 어느 날 선배가 들려준 얘기는 구원의 손길과도 같았다. “우리 회사 탭댄스 동호회에 잘생긴 남자들이 많대. 얼마 전엔 동호회에서 사내 커플이 탄생했다고 하더라.”

귀가 솔깃해진 강 대리는 곧바로 탭댄스 동호회에 가입했다. 그런데 막상 모임에 나가 보니 소문과 달리 ‘물’이 좋지 않은 것은 물론 소문난 ‘사내 폭탄’들만 득실거렸다. 실망한 강 대리가 다음에 발을 들여놓은 곳은 뮤지컬 동호회. 예ㆍ체능 쪽의 동호회여서 한껏 기대했지만 탭댄스 동호회보다 수질이 더 나빴다. “동호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참여해야지 딴 마음을 품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최근 오너 일가가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고 채권단 관리에 맡겨진 중견기업 A사에선 동호회가 하나둘씩 없어지고 있다. 회사를 떠나는 인력도 늘어 남은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가고 있다. 하지만 이 와중에서도 사내 합창단만은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노래를 통해 힐링(치유)을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게 이유라고. 합창단이 매달 한 번씩 여는 정기 음악회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갈수록 늘고 있다. 합창단이 ‘당신은 사랑받기 태어난 사람’ 등 치유형 노래를 부르면 눈물을 흘리는 직원도 많다고.

강경민/김병근/전예진/황정수/임현우/박한신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