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아이디어는 네트워크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대기업이 비교도 되지 않는 작은 기업에 밀리는 일이 왜 생길까. 어쩌면 대기업들은 더 이상 새로운 아이디어나 혁신 상품을 내놓지 못하는 구조적인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닐까.

테드(TED)콘퍼런스를 통해 국내 혁신가들에게도 친숙한 스티븐 존슨은 신간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를 통해 대기업이 혁신하지 못하는 현실을 고체, 액체, 기체의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고체는 완전한 질서, 기존 틀을 벗어나기 어려운 조직이다. 이미 꽉 짜여 있어 외부와 접촉하기도 어렵고 자극이 있어도 바뀌지 않는다. 수십년된 대기업은 돌이나 나무처럼 이미 고체 상태다.

'유레카' 아니라 집단적 연결

반면 기체는 아무런 통제도 없고 자유로운 조직, 그래서 무정부 무질서로 비유될 수 있는 집단을 말한다. 조직 형태를 띠지 못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 회의를 하는 것을 생각해보라. 무한히 변할 수 있지만 모든 생각이 중구난방이어서 실현이 어렵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아이디어는 이 양쪽의 중간쯤 되는 액체 상태에서 나온다. 고체에 비해서는 유동이 자유롭고 기체에 비해서는 틀이 잡힌, 회사로 보면 벤처기업이나 중견기업쯤 되는 날렵한 조직이다. 고체 상태의 회사가 아이디어를 내는 조직이 되려면 녹아야 한다. 주변인들, 즉 이업종이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액체처럼 유연하게 만들어야 새로운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다.

르네상스가 좋은 사례다. 원시 상태의 인간은 기체와 같은 혼돈 속에서 살았다. 이에 비해 수도원이나 성에 갇혀 살았던 중세는 꽉 잡힌 질서의 고체 사회였다. 이 중세의 벽을 허물고 서로 연결돼 있는 사람들을 통해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순환하게 함으로써 유럽에 새 정신을 불러온 것이 르네상스다.

중세가 성이요 수도원이라면 근대 이후는 도시다. 도시에는 충돌과 협력이라는 자극제가 있다. 수천~수만명의 사람들과 도시문화를 공유하고 있을 때 좋은 아이디어는 사람들에게서 다른 사람들에게 연결되고 전해진다. 인류는 도시를 이루고 나서야 ‘고밀도의 유동성 있는 네트워크’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충돌과 협력의 도시가 모델

회사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행태도 아주 중요하다. 대기업 사람들은 기존 기술과 상품을 지키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 벽을 쌓고 산다. 가까운 사람들하고만 교류한다. 고체 상태의 조직이다. 공무원끼리, 엔지니어끼리, 우리 회사 사람들끼리 몰려다니면 새로운 자극,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구석이 없다.

아이디어는 단일한 태생이 아니라 사람 관계라는 네트워크에서 나오는 것이 본질이다. 연구에 따르면 위대한 과학적 발명이나 발견도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천재가 외친 ‘유레카’의 결과라기보다는 연구자들이 함께 모인 회의탁자에서 의견을 나누고 언쟁을 벌이다 나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한다.

대기업은 과거의 성장이 쌓여 질서화되면서 스스로 혁신을 할 수 없는 집단으로 변해버릴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개인이나 조직의 고체 상태를 유동적 네트워크로 바꿔야 승산이 있다. 아이디어와 혁신의 시대, 개인이나 작은 기업이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여기에 있다.

권영설 편집국 미래전략실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