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굵은 주름은 곧은 성품, 섬세한 붓질은 절제된 몸가짐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을 보면 먼저 강렬한 눈빛에 압도당한다.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생생한 묘사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현재 심사정, 겸재 정선과 더불어 삼재(三齋)로 꼽히는 그는 동물이나 식물을 그릴 때 며칠 동안 관찰한 뒤에 붓을 들 정도로 정밀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자화상을 그리면서도 그는 오랫동안 바라본 자신의 얼굴에 정신세계까지 표현하기 위해 애썼다. 머리에 쓴 탕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 망건을 쓰고 있는데 이마가 넓게 드러나는 대머리임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콧구멍 사이로 삐져나온 코털까지 표현했고 윤곽선을 따라 뻗쳐 있는 구레나룻과 기다란 턱수염을 한 올씩 빈틈없이 묘사했다. 극사실적인 화풍은 사물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한 그의 학문 세계와도 닮았다.

[책마을] 굵은 주름은 곧은 성품, 섬세한 붓질은 절제된 몸가짐
조선 중기 서인(西人)의 지도자였던 성리학자 송시열은 반대 세력의 공격을 받아 제주로 유배됐다가 한양으로 압송되는 도중 사약을 받았다. 74세에 그린 그의 초상(사진)은 오랜 유배에서 풀려나 관직에 다시 오른 참의 모습이다. 관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있는 것은 재야에서 학문에 몰두하는 선비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깊게 파인 주름을 굵은 선으로 과장해 표현했는데 이는 송시열의 곧은 성품과 거칠 것 없는 기개를 잘 보여준다. 콧수염 아래로 보이는 두툼한 아랫입술은 그의 곧은 성품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군자의 삶, 그림으로 배우다》는 한국 회화사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인물화 50점을 선정해 그림과 함께 인물의 이력과 일화, 초상화를 그리게 된 동기 등을 설명해주는 책이다. 책은 실재 인물을 그린 초상화와 역사 속 인물의 유명한 이야기를 다룬 고사인물화, 도교의 신선이나 불교의 부처·보살 같은 종교 인물을 그린 도석인물화 등 세 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조선시대에는 ‘초상화 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초상화가 많이 그려졌다. 당시에는 주인공의 모습을 ‘터럭 하나까지 틀림없이’ 그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윤두서 자화상과 송시열 초상화에서 이 같은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선조들은 그 인물의 정신과 기품을 강조하려고 했다.

고사인물화는 역사나 문학 작품에서 모범이 되거나 흥미로운 인물을 주인공으로 그린 것이다. 그림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보다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데 교훈을 주려는 교육적 목적으로 많이 그려졌다.

1617년 그려진 ‘동국신속삼강행실도’ 가운데 ‘순흥화상’ 그림은 고려 때 효자 손순흥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몸져누운 어머니를 위해 산삼을 찾아 달여드렸고 나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초상화를 그려 하루에 세 번 그 앞에서 절을 하고 사흘에 한 번 무덤을 찾아갔다고 한다.

도석인물화는 중생을 구원하는 부처에 대한 경외감과 정신없는 인간사를 비웃는 신선에 대한 부러움을 담고 있다. 김홍도가 여신 서왕모의 잔치에 초대받은 신선들을 그린 ‘군선도’를 보고 있으면 커다란 화면을 신선들로 가득 채우면서 힘차게 붓을 놀리는 김홍도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