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내 투자금이 지리산 배추 키운다
“역시 ‘맨땅에 펀드’는 무모한 펀드다. 기름값, 투여 시간 등을 따지고 생각하면 경제적으로 나에겐 완전한 마이너스 펀드다. 만약 내 인건비를 책정하면 투자자들에 대한 배당은 당연히 줄어들 것이다. 나는 다른 것을 얻는다. 스토리다. 펀드 1년의 기록을 책으로 내고, 그 초판 인세 정도가 나의 인건비가 될 것이다.”

지난해 1분기 결산을 마친 펀드운용자의 소회다. 계좌당 30만원씩 100명이 투자해 마련한 총 3000만원의 펀드기금은 4분기까지 최종적으로 150만원 적자였다. 그러나 올해 이 펀드에는 신규 투자자가 344명으로 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맨땅에 펀드》는 농민과 도시인 간에 새로운 형태의 교류를 꿈꾸는 이색 농산물펀드에 대한 운용보고서다. 대도시에서 웹 디자이너로 일하다 가족과 함께 지리산 근처로 이사해 7년째 살고 있는 저자가 지리산닷컴(jirisan.com)에서 진행한 펀드의 기록이자 결산이다. 펀드기금으로 텃밭 1000평(3305㎡)과 감나무밭을 임대하고 마을 주민을 펀드매니저로 고용해 일당을 주고 친환경적으로 농사한 감, 고구마, 배추 등을 투자자들에게 배당했다.

사이트에는 운용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어떤 작물을 파종하고 수확하는지, 가뭄과 장마에는 어떤 영향을 받는지, 심지어 어떻게 도둑을 맞는지, 그 작물을 돌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즐겁고 힘든지를 투자자들과 세세하게 공유했다. 일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가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게 이 펀드의 특징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펀드 운용에 대해 ‘직거래’를 빙자한 ‘매개’ 행위라고 규정한다. 시골과 도시, 맨땅과 식탁,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함께한다’는 마음을 만들어내는 행위라는 것이다.

전국에 있는 수많은 ‘체험마을’에서는 시골의 정서와 마을 공동체 같은 정서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농사가 아닌 관광으로 살아가면서 부작용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관(官)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삶을 꿈꾸는 이 펀드에 사람들이 호응하는 이유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