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수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가 지난 6일 ‘파이로 프로세싱’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파이로 프로세싱은 쓰고 난 핵연료를 다시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게 바꿔주는 기술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이한수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가 지난 6일 ‘파이로 프로세싱’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파이로 프로세싱은 쓰고 난 핵연료를 다시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게 바꿔주는 기술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핵연료를 재활용하면 방사능 반감기가 30만년에서 300년으로 1000분의 1로 줄어듭니다. 배출되는 고준위 폐기물 양도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습니다.”

지난 6일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만난 이한수 파이로기술 부장(박사)은 “국내에서는 2016년부터 원전마다 핵폐기물 임시저장소가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된다”며 “핵연료 재활용은 국토가 좁고 인구 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70명이 넘는 연구팀을 이끌며 쓰고 난 핵연료를 에너지원으로 다시 쓸 수 있는 ‘파이로 프로세싱’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핵연료, 몇 번이고 재사용 가능

파이로 프로세싱은 섭씨 500~650도의 고온에서 용융염(녹아내린 소금)을 이용해 쓰고 난 핵연료에서 유용한 핵물질을 분리해내는 방법이다. 이 부장은 “도금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액체 상태의 용융염에 사용 후 핵연료와 전극을 넣으면 우라늄과 플루토늄 혼합물이 전극에 달라붙어 나온다”고 설명했다.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주요 원자력 선진국이 모두 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분리해낸 핵물질은 2028년 준공하는 4세대 원자로인 소듐냉각고속로에서 연료로 이용된다. 물(경수·중수)이 아닌 소듐(Na)을 냉각제로 이용하는 이 원전은 우라늄-235 외에 우라늄-238, 플루토늄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우라늄은 핵분열이 가능한 우라늄-235와 핵분열이 되지 않는 우라늄-238이 있는데, 자연 상태에서는 우라늄-235가 0.7%밖에 들어 있지 않다.

이 부장은 “우라늄-235만을 연료로 사용하는 경수로·중수로와 달리 고속로는 사용 가능한 연료 범위가 넓다”며 “그만큼 핵연료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이로 프로세싱을 통한 핵연료 재활용과 고속로를 결합하면 ‘이론적으로’ 무한대로 핵연료를 재순환해 사용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3년간 전기를 생산하고 난 우라늄은 핵폐기물로 간주해 버렸지만 앞으로는 몇 번이고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파이로 프로세싱은 평화적


파이로 프로세싱도 핵연료 재처리 기술이다. 하지만 이 부장은 ‘재처리’가 아니라 ‘재활용’이 올바른 용어라고 강조한다. 핵무기로 들어가는 순수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파이로에서는 플루토늄이 불순물이 섞인 상태로 나온다”며 “순수한 플루토늄을 만들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목적이라면 퓨렉스(PUREX)를 이용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퓨렉스는 순수한 플루토늄을 분리해낼 수 있는 대표적인 핵연료 재처리 공법이다. 미국 프랑스 영국 일본 등이 쓰고 있다. 북한도 퓨렉스를 이용해 플루토늄을 추출했다.

한국의 핵연료 재처리에 반대하고 있는 미국이 파이로 프로세싱만은 인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국은 2011년부터 한·미 공동연구단을 세워 기술을 함께 개발하고 있다. 2020년까지 기술성, 경제성 등을 검증한 후 상용화에 나설 계획이다. 이 부장은 “미국은 카터 대통령 시절 모든 원자력 연구를 중단하면서 기술 퇴보를 겪었다”며 “지금은 한국이 이 분야에서 앞서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1997년부터 개발에 나선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최근 가시적인 성과도 냈다. 연구원 내에 3층 규모의 시험시설을 만든 것. 오는 9월 가동에 들어간다.

이 부장은 “세계 최초로 파이로 프로세싱의 모든 과정을 일관 공정으로 시험해 볼 수 있는 시설”이라며 “한국이 4세대 원자력 발전에서도 선두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