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위암 진단 이후 수차례 항암·방사선 치료를 받아온 이모씨(73)는 오랜 투병으로 우울증이 겹쳤다. 암환자를 바라보는 주변의 동정론에 괜스레 심리적으로 위축되면서 바깥 출입이 줄고 식사량도 감소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침에다 몸에 열이 나서 병원을 찾은 결과 폐렴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씨는 현재 폐렴이 악화하면서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암 치료와 우울증이 면역력을 떨어뜨렸고, 그것이 결국 폐렴으로 이어졌다.

고령화, 100세 장수 시대의 최대 복병으로 폐렴이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병·의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은 가장 흔한 질병은 폐렴이었다. 2010년 22만1000명에서 2011년 27만5000명으로 1년 새 무려 24% 급증했다. 지난해의 경우 역대 처음으로 폐렴으로 인한 입원환자가 3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폐렴 사망률도 연평균 15%씩 늘고 있다. 고령사회를 맞아 ‘폐렴 비상사태’라 할 정도로 폐렴이 해마다 급속히 느는 것이다. 특히 1년 중 이맘때인 환절기에 가장 생기기 쉬운 질병이 폐렴이어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고령·장수사회 최대 복병 ‘폐렴’

지난 10년 동안 사망률이 가장 크게 증가한 병이 폐렴이다. 폐렴은 2000년 한국인의 사망 원인 11위(인구 10만명당 6명)였다. 그러던 것이 2010년부터 6위(10만명당 17명)로 올라섰다. 암환자나 뇌혈관·심장병 환자 등도 실제적으로는 폐렴에 걸려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노년기 가장 흔한 직접적 사망 원인이다. 50세 전후 폐렴 사망률은 남자의 경우 인구 10만명 기준으로 3.2명이지만, 75세 이상에서는 317명이다. 100배가량 높다. 2010년 암 사망률이 143명인 것과 비교하면 고령자에서는 암보다 무서운 것이 폐렴인 셈이다. 폐렴은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해 영화 ‘감각의 제국’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을 비롯해 1970·1980년대 국내 주먹세계를 평정했던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 씨 등이 폐렴 및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시드니 셸던의 사망원인도 폐렴이었다. 116세로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고령자였던 카포빌라 할머니는 117세 생일을 한 달 남겨둔 2006년 8월, 폐렴으로 입원한 지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나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일반적으로 장기이식을 받았거나 항암 치료를 받는 암환자가 폐렴에 특히 잘 걸린다. 각종 질병으로 수술을 받은 후 회복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합병증으로 폐렴이 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다시 말해 면역력이 떨어지는 경우라면 모두 폐렴에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폐렴 예방하려면

폐렴을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폐렴 발병의 30~40%를 차지하는 폐렴구균 백신을 맞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의 접종률은 10%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국의 60~70%에 비해 한참 못 미친다. 백신의 중요성은 현재 폐렴균에 대한 항생제 내성률이 매우 높은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즉 폐렴구균에 흔히 쓰이는 매크롤라이드라는 항생제의 내성률은 약 78%다.

송재훈 성균관대 의대 교수에 따르면 폐렴구균이 뇌수막염을 일으켰을 때 쓰는 페니실린의 내성률도 83%나 된다. 즉 폐렴 치료에 쓰이는 항생제의 내성률이 워낙 높아 치료가 잘 안 될 수 있으니, 백신으로 발생 자체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감염학회의 정두련(삼성서울병원) 총무이사는 “나이 들수록 면역세포의 기능이 떨어져 폐렴 발병 위험이 커진다”며 “50세 이상부터 폐렴 백신 접종을 권장하고, 65세 이상과 당뇨병 등 만성 질환자는 반드시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폐렴 발생 고위험 그룹은 △천식·만성 폐쇄성 폐질환 등 호흡기 질환 △알코올 중독자 또는 장기간 흡연자 △간경화, 만성 신부전증, 심근경색증 등 만성 질환자 △면역력이 떨어지는 암환자 등이다.


◆백신 제대로 맞자

올해부터 65세 이상 노인은 폐렴구균 백신을 무료로 접종할 수 있다. 보건소나 집 주변 병원 등 어느 의료기관에서도 접종받을 수 있는 만큼 받드시 접종받는 게 좋다. 물론 백신을 맞는다고 면역 효과를 모두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백신 전문가인 강진한 서울성모병원 소아과 교수는 “접종 전 충분한 사전 진찰을 통해 최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몸 상태에서 접종이 이뤄져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도움말=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