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덕 일본 다마(多摩)대 경영정보학부 교수의 이력은 특이하다. 1962년 일본 효고(兵庫)현에서 태어난 그는 와세다대에서 국제경제경영학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따고 미쓰이물산 전략연구소에 입사했다. 담당 분야는 한국 및 동북아시아였다.

1995년부터 3년간 북한의 김일성대 경제학부에서 자본주의 경제를 가르치기도 했다. 일본 내 조총련계 대학인 조선대에서 잠깐 경영학 강의를 맡았던 게 인연이 됐다. 한국과 일본, 북한을 아우르는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일본 기업에서 한국 기업을 연구한 덕에 한ㆍ일 기업의 전략과 문화에도 해박하다.

다마대에서 ‘현대한국론’과 ‘동북아시아론’ 등을 가르치고 있는 김 교수에게 요즘 외부강의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 기업에 대한 일본 기업과 경제단체들의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본 경영학계에도 ‘한류붐’이 불고 있다고 했다. 그의 단골 강의 주제는 ‘한국 기업을 배우라’는 것이다. 최근엔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한국 기업, 세계에서 왜 잘나가는가?’라는 제목의 책도 출간했다.

▷외부강의를 나가시면 어떤 질문을 가장 많이 받나요?

“어딜 가나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과 비교해서 어떤 점이 다르냐는 질문부터 합니다. 뭐가 다르기에 이렇게 단기간에 격차가 줄었느냐는 의문입니다. 일부 분야에서는 오히려 한국 기업이 앞서나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전자 분야가 대표적입니다. 작년에 소니 샤프 파나소닉 등 일본 3대 전자회사는 총 1조7000억엔의 적자를 낸 반면 삼성전자는 1조엔 이상의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일본 기업의 관심밖이었습니다. 미쓰이물산 전략연구소에 있을 때 한국 관련 리포트를 100편 정도 썼는데, 당시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엄청나게 변했습니다.”

▷한ㆍ일 기업 간 차이를 어떻게 설명하시나요?

“종종 피겨스케이트 라이벌인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를 예로 듭니다. 김연아는 일찌감치 점프기술로는 경쟁력이 약하다고 판단, 일본에서 ‘모노즈쿠리(최고 제품 만들기)’라고 일컫는 신기술 개발 전략을 접었습니다. 대신 캐나다로 가서 올림픽 심사위원의 선호도와 심사 행태를 면밀히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연출력과 호소력, 즉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거기에 집중했습니다. 반면 아사다 마오는 끝까지 고난도의 트리플 악셀 점프에 매달리다가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습니다. 한ㆍ일 기업 간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알듯 모를 듯 한데요.

“앞서 김연아를 예로 든 것처럼 한국 기업은 전반적으로 ‘마케팅 지향의 경영 스타일’을 구사합니다. 이에 비해 일본은 기술을 중시하는 ‘고품질 제품 지향의 경영’을 추구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은 자사의 기술을 기반으로 하되, 모자란 기술은 외부에서 들여와 융합하는 ‘기술 매니지먼트’ 성향이 강합니다. 반면 일본은 어떻게든 독자적 기술을 만들어내는 ‘기술 이노베이션’에 집착합니다. 이런 인식 차이는 경제 현장에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해외전략의 경우 한국 기업은 현지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한국 모델을 과감히 수정하는 ‘현지화’ 전략을 취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자사의 모델을 그대로 수출하는 ‘일본화’ 경향을 띠었습니다. ‘좋은 제품을 만들면 반드시 팔린다’는 일본식 신화에 갇혀 있던 거죠. 신흥국 시장에서 최근 들어 한국이 일본보다 좋은 성과를 내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일본 기업의 신흥국 진출 자체가 좀 늦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골드만삭스가 ‘브릭스(BRICs)’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게 2001년입니다. 한국은 곧바로 이들 시장으로 진출했지만 일본 기업은 미적거렸습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중국은 믿지 못할 시장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러시아에 대해서는 아직도 적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이다보니 신흥국 시장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일본 기업들이 소홀했습니다. 최근 만난 혼다자동차 임원도 ‘아시아형 경영기획 인재가 없다. 그저 관리하는 사람만 있고, 전략을 짜는 직원은 드물다’고 푸념하더군요.”

▷한ㆍ일 기업 간 또 다른 차이점을 꼽으신다면.

“리더십이라고 볼 수 있죠. 한국 기업의 리더십은 ‘오너 경영자의 하향식 스피드 경영과 위험 감수’라는 특징을 띱니다. 일본 기업은 이와 달리 ‘샐러리맨 경영자의 뛰어난 균형감각과 위험 회피력’을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각각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 경제구조가 급변하는 시기에는 한국식 리더십이 더 먹힙니다. 일본 기업들은 전문경영인들에게 전적인 권한이 없고, 리스크를 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과감한 투자에 약합니다. 결국 중요한 국면에서 실기를 하게 되는 셈이죠. ”

▷한국 기업을 너무 띄워주시는 건 아닌가요?

“하하. 당연히 한국도 문제가 많습니다. 아마 한국 기업과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강의하는 것이 장점을 설명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한국 경제는 한마디로 ‘쓰나와타리(つなわたりㆍ외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몇몇 소수의 대기업에 의존하는 비중이 너무 큽니다. 대기업 자체도 오너십에 따른 리스크가 과도한 측면이 있습니다. 오너가 올바른 판단을 내리면 승승장구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제어장치가 없다는 얘기죠. 기술 기반도 허약합니다. 무엇보다 업종별로 탄탄한 중견기업을 키워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시급하다고 봅니다.”

▷주제를 바꿔 보죠. 김일성대에서 강의한 경험이 있는데.

“1995년 5월부터 3년 동안 가르쳤습니다. 김일성대 경제학부에 대외경제학과가 신설된 것이 계기가 됐죠. 외국 기업이 북한에 들어올 경우에 대비해 나진ㆍ선봉 등에서 일할 인재를 육성하는 게 학과 신설의 목적이었습니다. 북한이라는 땅에서 북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본주의와 재정학 등을 강의하려니 문제가 많았습니다. 세금을 내지 않는 나라에서 세금을 가르치려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고요. 하지만 북한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사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 정세를 북한이라는 변수를 빼고 논의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

▷김정은의 북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여러가지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정은은 어릴 때부터 자본주의가 몸에 밴 사람입니다. 예전처럼 폐쇄적인 정책으로는 북한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할아버지나 아버지에 비해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봐야겠죠. 통치 스타일도 달라질 겁니다. 김정은이 지난 5월 만경대유희원을 찾아 ‘잡초를 제대로 제거하지 않았다’고 질책했다는 뉴스를 보고 개인적으로는 많이 놀랐습니다. 예전엔 찬양 일색의 뉴스뿐이었는데 말이죠. 광명성3호라는 인공위성 발사에 실패했다는 것을 곧바로 발표한 것도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는데.

“중국의 속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북한 내부적으로 중국을 크게 신뢰하지 않습니다. 줄곧 중국을 수정주의라고 비판해 왔지 않습니까. 고구려 등 역사문제에 있어서도 중국에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제일 큰 불만은 무역입니다. 중국의 이권에 놀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죠. 앞으로도 중국에 대해서는 ‘조심은 하되, 이용할 건 이용하자’는 기본 스탠스를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탈원전 분위기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일본 국민들이 큰 착오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여파로 방사능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것은 이해합니다만 ‘원전 제로’로 가자는 것은 잘못된 방향입니다. 산업계에서도 걱정이 큽니다.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는 아직 기술력도 떨어지고, 발전 단가도 높습니다. 일본이 원전을 멈추는 사이 한국과 중국 등의 원자력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나중에 결국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원자력 기술을 사오는 처지가 될 것이라는 자조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