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벌인 축제의 결과는 구제금융이다.”

스페인 구제금융에 대한 AP통신의 평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만 해도 스페인은 유럽 4위의 경제대국으로 불렸다. 그러나 은행 부실로 10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스페인 함대를 침몰시켰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은행의 부실자산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은행 부실은 국가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졌다. 스페인은 이번 긴급자금 수혈로 한숨 돌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구제금융으로 인한 국가부채 증가와 신뢰도 추락은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부동산 대출·복지병이 발목

스페인이 구제금융을 받게 된 직접적 이유는 부동산 대출이 부실화됐기 때문이다. 현재 스페인 금융권의 부동산 대출 규모는 약 4000억유로. 이 중 1800억유로는 사실상 회수 불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스페인에서 재연된 셈이다.

스페인 위기는 유로존에 가입하면서 시작됐다. 1999년이었다. 유로존 가입 전 연 12.75%(1995년)에 달했던 10년 만기 스페인 국채 금리는 가입 후 계속 낮아졌다. 2005년에는 약 3%까지 내려갔다. 저금리는 부동산 붐으로 이어졌다. 스페인 금융권은 대학생들에게까지 돈을 빌려주면서 부동산 구매를 부추겼다. ‘스페인 축제(Spanish Fiesta)’라는 말까지 나왔다. 스페인은 1994~2007년까지 연평균 3.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부동산 호황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진 셈이다.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1.4%로 독일(6.2%)의 약 2배에 달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거품은 급속히 꺼졌다. 2008년 이후 스페인 부동산 가격은 고점 대비 약 25% 추락했다. 내년 말까지 15%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에 기댄 경제성장이 멈추자 경제여건은 급속히 악화됐다. 실업률은 2007년 8.3%에서 2009년 18%로 높아졌다. 올해는 25%대까지 치솟았다.

과도한 복지도 문제였다. 호세 루이스 사파테로 전 총리와 마리아노 라호이 현 총리가 연금수령 연령을 높이고 긴축정책을 도입하기 전까지 스페인 사람들은 은퇴 전 15년 평균급여의 85%를 연금으로 받을 수 있었다. 학비, 의료비도 공짜였다. 전체 공공지출의 66%가 사회보장 관련 비용이다.

○몇 년은 대가 더 치러야

스페인은 이번 구제금융에도 축제의 가혹한 대가를 몇 년은 더 치러야 한다. 라호이 스페인 총리도 이를 인정했다. 10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올해 경제성장률은 약 -1.7%로 향후 최소 3년간은 경기 침체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에게 “실업률은 더 높아지고 기업은 투자자금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고통스러운 시간이 계속될 것”이라고도 했다. 감내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구제금융의 효과에 대해서는 “금융회사 붕괴를 막아 유로화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지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스페인 경제 문제 해결보다는 유로화를 지키는 것이 구제금융의 더 중요한 목표였다는 것을 시사한 대목이다.

스페인은 이미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 경기 침체에 빠졌다. 여기에 1000억유로의 빚이 더해지면 경기부양에 나서는 것은 더 어려워진다. 구제금융은 성장을 통한 경제 회생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셈이다. 영국 가디언은 “스페인 구제금융이 유럽 금융 시스템 마비를 막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스페인 경제에는 큰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구제금융이 스페인 은행에도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스페인의 금융위기를 막을 수 있는 핵심 조치는 스페인에 돈을 맡겨도 안전하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라며 “이번 구제금융으로 스페인 정부는 국민과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잃었다”고 평가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