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고스의 눈’이 붙어 있는 공작의 꽁지깃만큼 화려한 것도 없다. 사치스럽지 않으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보고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지만 말이다. 다윈의 ‘자연 선택’이란 시각에서 보면 이 공작의 꽁지깃만큼 어처구니없는 것도 없다. 천적의 눈에 잘 띄는 데다 도망칠 때도 거추장스러울 게 틀림없어서다. 다윈은 이를 ‘성(性) 선택’ 이론으로 설명했다. 원칙적으로 암컷은 아름다운 수컷과 짝짓기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자연이 미(美)를 허용하는 까닭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공작의 암컷은 정말 색깔 등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갖고 있을까. 성 선택이 작용한다면 왜, 어떻게 그리되는 것일까.

독일 뮌헨동물학연구소의 요제프 라이히홀프가 생물체에 발현된 아름다움의 기원에 현미경을 들이댔다. 《미의 기원》이 그 결과물이다. 독일어권 최고의 진화생물학자로 꼽히는 저자는 생물의 진화 과정에서 아름다움이 차지하는 역할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펼쳐 보인다. 풍부한 관찰 사례와 인문학적 글쓰기는 진화생물학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이스라엘 생물학자 아모츠 자하비가 성 선택이 기능하는 이유로 제시한 ‘핸디캡 이론’의 허점을 짚는 것으로 이야기를 푼다. 핸디캡 이론은 사람이건 동물이건 젊은 수컷들은 스스로를 과시하기 위해 ‘위험’이란 핸디캡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공작의 화려한 꽁지깃도 그렇게 나온 것이란 설명이다.

저자는 같은 종 새들의 깃이 미적으로 똑같다는 데 주목한다. 핸디캡 이론이 작용한다면 수컷들은 개체별로도 천차만별이어야 옳지 않으냐는 것. 모든 수컷이 똑같은 핸디캡을 갖고 있다면 암컷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핸디캡이 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공작의 꽁지깃처럼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신체조직도 “생존을 위한 중요한 기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천적이 뒤에서 덮칠 때 꽁지깃을 몸통인 것처럼 위장하고, 급할 때는 꽁지깃을 떼어주고 도망친다는 것이다.

저자는 수컷의 화려함이 몸속에서 진행되는 대사와도 관계가 깊다고 말한다.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는 암컷과 달리 수컷은 에너지가 남아돈다. 그러면 살이 찌게 되고 움직임이 둔해져 생존경쟁에 불리해진다. 어떻게든 이 남아도는 에너지를 소진시켜야 한다. 열정적인 구애동작, 끊임없는 지저귐 등으로 여분의 열량을 소진시켜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소진되는 열량은 암컷이 부화와 양육에 소모하는 에너지 양과 비슷하다. 수컷이 새끼 양육을 적극 거드는 새는 암컷처럼 외모가 수수하다는 사실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카로티노이드 성분은 노랑, 빨강 깃을 만들어주는데 수컷은 이를 깃에 침전시키고, 암컷은 대부분 알의 노른자위로 흘려보낸다는 것도 수컷의 아름다움과 대사의 관계를 설명해준다.

저자는 생물체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보여주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높은 에너지 투입과 연결돼 있다고 말한다. 암컷들은 아름다움 자체가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표현되는 활동성 등 번식에 도움이 되는 수컷들의 몸 상태를 간파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름다움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은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을 다시 들추게 만든다. 그러나 저자는 “환경에 적응해 번식하는 게 자연 선택의 전부는 아니다”며 “환경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자유’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생명체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그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끊임없이 애쓴다”며 “같은 환경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생물이 존재하는 것처럼 진화는 이런 ‘자유’를 전제로 한다”고 강조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