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로에 대고 말하면서 스위치를 조작하면 목소리 크기가 확연히 커지는 것을 알 수 있다.”

1947년 크리스마스 이브. 벨 연구소의 월터 브래튼이 전날 자기 팀이 만든 증폭기의 시연 상황을 회로도와 함께 적어놓은 이 말은 20세기 극소전자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최초의 공식 기록이다. 이듬해 ‘반도체 삼극진공관’ ‘표면 장벽 삼극진공관’ ‘결정 삼극진공관’ ‘고체 삼극진공관’ ‘아이오테트론’ ‘트랜지스터’ 중에서 이름이 결정됐고, ‘벨 전화연구소 공식 기밀 기술’ 딱지가 붙은 트랜지스터의 탄생이다.

1925년 미국 독점 전화회사였던 AT&T가 세계 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이름을 따 설립한 벨 연구소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민간 과학기술 연구소로 꼽힌다. 설립 이래 보유하고 있는 특허만 3만3000개나 되며 노벨상 수상자만 해도 13명을 헤아린다. 트랜지스터와 함께 전화교환기, 광통신, 휴대전화, 통신위성, 디지털 카메라 분야의 핵심 기술이 다 이 연구소에서 나왔다. 한국계 김종훈 사장이 최연소, 최초 외부인, 최초 동양인 사장으로 2005년 취임해 낯익은 곳이기도 하다. 2006년 프랑스 알카텔-루슨트로 주인이 바뀌었다.

《벨 연구소 이야기》는 이곳이 어떻게 이처럼 큰 성과를 냈는지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벨 연구소의 혁신과 성과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연구소를 대표할 만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풀어낸다. 저자는 “벨 연구소의 성공은 한 천재의 힘이 아니다”고 말한다. 아이디어를 내는 과학자와 그 아이디어를 제품화하는 엔지니어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문화를 조성, 우리가 지금 ‘현재’라고 부르는 ‘미래’의 구상을 설계했다는 것이다.

저자의 눈에 비친 벨 연구소는 요즘의 최첨단 기업보다 더 포괄적이고 야심찬 혁신 과정을 보여준다. 머빈 켈리, 존 피어스 같은 벨 연구소 관리자들은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조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을 관리하기보다 전체적인 아이디어의 생산 과정을 관리하는 등 독특한 문화를 이끄는 데 주력했다.

무엇보다 빠른 개발을 독려하는 성과급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응용하기보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동기 부여’를 중시했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엔지니어와 과학자를 차별하지 않고, 재능과 성격이 전혀 다른 사람들을 유기적으로 섞이게 했다. 과학자가 아이디어를 내 발명하면 엔지니어는 이를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드는 역할을 담당했다. 조직 구성원 간 이런 협업을 위해 새 연구소 건물 구조도 달리 했다. 되도록 여러 사람들이 마주칠 수 있게끔 200m가 넘는 복도를 둔 것.

지식재산권 관리도 철저했다. 신입 사원에게 자신의 발명을 회사에 양도할 것을 서명하도록 했다. 특허 출원의 근거를 확실히 하기 위해 연구소 탁자에 공책을 두고 실험 내용과 결과, 미래를 위한 아이디어와 계획까지 세세히 기록하게 했다.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실험 결과나 아이디어는 다른 엔지니어가 확인한 뒤 서명하도록 했다.

저자는 “벨 연구소는 구성원들 사이에 성격 충돌이 일어나고 오만에 빠지기도 했으며 전략적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는 등 완벽하지는 않았다”면서도 “트랜지스터를 만든 1947년 겨울 전후의 일들을 이해하면 혁신과 기술 진보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