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년 역사의 코닥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법정관리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는 루머가 도는 가운데 주가는 1930년대 대공황 때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폭락했다. '필름(과거)'에 집착해 '디지털(미래)'이란 트렌드를 읽지 못한 결과다.

블룸버그통신은 1일(현지시간) 경영난에 허덕이는 이스트먼 코닥이 파산보호신청(법정관리)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법정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로컴 존스데이를 자문사로 선임했다고 덧붙였다. 이 소식에 전날 코닥의 주가는 하루 새 54% 급락해 0.7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대공황기였던 193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채권가격도 급락 중이다. 이날 2013년 만기가 돌아오는 코닥의 100만달러짜리 채권은 26만달러에 거래돼 사실상 부실채권으로 전락했다. 이에 앞서 신용평가회사인 피치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코닥의 신용등급을 CCC에서 CC로 강등했다. 부도위험이 높은 정크본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코닥이 자문사로 선정한 존스데이의 대표적 카운슬러인 코니 볼은 과거 크라이슬러가 파산했을 때 어드바이저 역할을 했던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코닥은 이에 대해 "현재 파산신청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코닥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교수를 지낸 컨설턴트 피터 코한 사장은 "코닥의 성공이 그 회사를 죽이고 있다"며 "코닥이 이렇게 오래 버틴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평가했다. 과거 필름시장에서의 성공에 취해 디지털시대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

1880년 설립된 코닥은 처음으로 일반인이 사용하기 쉬운 필름과 이를 활용한 편리한 카메라(브라우니)를 개발했다. 이를 기반으로 1900년대 카메라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아날로그용 카메라 필름시장 점유율은 80% 수준이었다.

코닥의 가장 큰 실수는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고도 이를 상용화하지 않았다는 것.코닥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었다. 1981년에는 내부 보고서를 통해 디지털 카메라의 위협에 대해서도 정확히 분석했다. 그러나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 사업에 나서지 않았다. 기존 시장인 아날로그 필름시장을 지키겠다는 오만함이 문제였다.

포지셔닝의 저자 잭 트라우트는 "성공한 거대기업은 스스로 공격하지 못한다"며 "머뭇거리는 사이 새로운 경쟁자들이 디지털 사진시장을 차지하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한때 14만명이 넘었던 코닥의 직원 수는 현재 1만9000여명에 불과하다.

코닥의 과거에 대한 집착은 어정쩡한 상품 개발로 이어졌다. 1990년대 코닥은 8년간 10억달러를 투자해 차세대 필름카메라 기술인 '어드밴틱스'를 개발했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에 맛을 들인 소비자들은 이 상품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코닥은 결국 2004년 이 카메라 라인을 폐쇄했다. 또 경쟁자들에 대한 안일한 대응도 코닥의 문제점으로 꼽혔다. 코한 사장은 "1980년대 일본 후지필름이 저가의 제품을 출시하고 공격적 마케팅(로스앤젤레스 올림픽 후원 등)을 통해 시장을 잠식했지만 오만한 코닥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비관련 사업 다각화도 코닥의 실패 원인으로 거론된다. 1988년 코닥은 '스털링 드러그'란 제약회사를 51억달러에 매수했다. 코닥은 스스로 화학회사라고 규정,시너지가 있을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6년 후 코닥은 이 회사를 하나하나 뜯어내 팔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2005년 휴렛팩커드(HP)에서 프린터 사업부를 담당했던 안토니오 페레즈를 영입해 프린터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도 마찬가지다. 이미 그 시장은 HP 등 쟁쟁한 경쟁자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코닥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특허를 매각해 회사를 정상화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인수 의사를 가진 업체들은 코닥이 위험한 상황에서 특허를 매입하면 복잡한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소극적 태도로 나오고 있다. 현재 코닥의 특허 가격은 3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