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에는 모두 자신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한국 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 (2)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
어느 날, 내가 자는 동안 지구가 태양 주위를 무진장 빨리 도는 바람에 하룻밤 새 몇 천 년이 지나갔다고 치자.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 누군가 흔들어 눈을 떴더니 거기 최첨단 미래 소재의 옷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지구가 당신만의 별이 됐다고 이렇게 계속 잠만 잘 건가요?"

"나만의 별이 됐다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있나요?"

그녀는 하늘을 가리켰다.

"우리의 과학 기술은 너무나 발달해서 한 별에서 모여 살 필요가 없어요. 우주에는 별이 무한하게 많거든요. 지금은 별 하나에 한 사람씩 살아요. "

"그럼 다른 사람들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만 하나요?"

"일단 우주선 안에 들어가서 외치세요. 저별로가! 그러면 원하는 별로 갈 수 있어요. 다시 돌아오고 싶으면 이별로가, 라고 외치세요. "

우리는 가까운 별로 가서 과연 거기에는 어떤 사람이 사는지 만나보기로 하고 우주선에 올라탔다.

저별로가! 내가 외쳤다.

덜컹덜컹 우주선이 움직였다.

너무 빨리 가면 여행의 묘미를 잃을까봐 일부러 속도를 늦췄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대기권을 벗어나자 우주공간으로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모습이 보였다.

"저걸 보니까 언젠가 읽은 소설의 한 구절이 떠오르네요. "

"어떤 소설인가요?"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예요.

태어나자마자 납치돼 팔려온 여자아이 이야기예요.

이름은 라일라.

하지만 진짜 이름은 몰라요.

북아프리카에서 부모 없이 비참하게 살던 라일라는 마찬가지 처지였던 후리야 덕분에 스페인을 거쳐 파리까지 가죠.

거기서 세네갈 출신 노인 엘 하즈를 만나 이런 말을 들어요.

'라일라야, 너는 아직 어리니까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할 거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는 도처에 아름다운 게 많다는 걸 알게 될 테고, 멀리까지 그것들을 찾아나서게 될 거야.' 저렇게 아름다운 별 사이로 여행하니 그 말이 생각나네요. "

"그래서 라일라도 우주여행을 하나요?"

"아시겠지만, 우리 시대에는 우주여행 비용이 너무 비쌌어요.

대신에 하나의 별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죠. 몇십억 명이 서로 사랑하고 증오하고, 껴안고 또 때리고, 달래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그렇게 몇십억 개의 삶이 별 하나에 모여 있었죠."

"별 하나에 몇십억 사람들이라 상상할 수 없군요. "

"맞아요, 하지만 지금과 비슷하기도 해요.

비록 라일라가 우리처럼 우주선을 타고 가는 건 아니지만 마치 여행하듯이 여러 사람들을 만나니까요. 지금 가는 별은 어딘가요?"

"고양이별이군요. "

"우리가 고양이별에서 얼마간 시간을 보낸다는 건 우주에 존재하는 다른 수많은 별들을 방문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에요.

그래서 고양이별은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특별해지는 거죠.

라일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비슷한 걸 깨닫게 됩니다.

즉, 특정한 인생의 한 시기를 누군가와 보낸다면, 그건 그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인간을 만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걸.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특별하고 소중해진다는 걸.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라일라는 관찰해요. "

"관찰?"

"예, 관찰. 마치 낯선 지방을 방문한 아이처럼.

또 그 모두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듯이.

파리에서 라일라가 한 일은 이런 거예요. '

나는 모든 구역들을 걸어서 돌아다녔다.

쇼세 당탱, 오페라, 마들렌, 세바스토폴, 콩트르스카르프, 당페르 로슈로, 생 자크, 생 탕투안, 생 폴.

오후 세시에도 잠든 듯 조용하고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된 부자들의 구역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구역도 있었다.

어떤 구역은 무척 소란스러운데다가, 둘러보면 교도소 울타리와 흡사하게 붉은 벽돌로 된 기다란 담, 계단과 난간과 공터들, 이상한 차림의 사람들로 가득 찬 먼지투성이 공원들.

' 또 이런 문장도 있어요. '나는 지리학과 동물학 책을 읽었고, 졸라의 [나나]와 [제르미날], 플로베르의[보바리 부인]과[세 가지 이야기], 위고의[레미제라블],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카뮈의[이방인]과 [페스트], 슈바르츠 바르의[마지막 의인]

'……"

"끝이 없군요. 라일라는 시간이 무척 많았던 모양이군요. "

"그렇다기보다는 자기 생을 사랑했기 때문이죠."

"혹시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자기 생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려는 건 아니겠죠?"

"정확하게 그 말을 하려는 겁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그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다 알아내려고 애쓸 겁니다.

책뿐만 아니에요.

음악도 듣고, 그림도 보고, 춤도 추고, 외국에도 갈 거예요.

가능한 한 모든 걸 맛볼 겁니다.

이 삶에 눈멀고 귀먹고 입 다문 사람이라면 그물에 걸린 물고기의 신세나 마찬가지죠.

자유로운 물고기라면 자신의 입과 코와 눈과 귀로 자기 앞의 삶을 맛보고 냄새 맡고 보고 들을 거예요. 그게 바로 황금 물고기죠."

"그렇다면 그건 자유 물고기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도착할 시간이 다 됐네요. 그 황금 물고기가 하는 일은 뭔가요?"

"자신에게 돌아가는 일이에요.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매순간 성장해요. 바뀌고 또 바뀌죠.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이 되죠. 마치 우주를 떠돌다가 이별로가, 라고 외친 것처럼. 우린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늘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

"이런, 이런. 뭔가 잘못됐군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어요. "

"제가 이별로가, 라고 말해서인가요?"

"그런 모양이네요. 잘됐네요. 그 소설 얘기 계속해주세요. "

그래서 나는 다시 ?~황금 물고기??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주 상세하게 설명할 계획이었다.

※이 코너는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cafe.naver.com / mhdn)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김연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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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 매매단에 납치된 흑인 소녀의 인생역정


▶ '황금 물고기' 줄거리


[한국 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 (2)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
르 클레지오는 1940년 프랑스의 항구도시 니스에서 태어났다.

1963년 데뷔작 [조서]로 르노도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이후 [홍수] [사막]과 같은 화제작을 잇달아 발표하며 작가적 재능을 발휘했다.

2008년에는 '지배적인 문명 너머 또 그 아래에서 인간을 탐사한 작가'라는 평과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 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신화',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로 일컬어지는 그는 또한 지한파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그의 작품 중 [허기의 간주곡]은 서울에 머무를 당시 집필한 소설이기도 하다.

[황금 물고기]는 1997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순수문학으로는 이례적으로 장기간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킨 작품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나고 자랐는지도 모른 채 어린 나이에 인신매매단에 납치된 한 흑인 소녀의 인생역정을 다루고 있다. '밤'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소녀 '라일라'는 어릴 적 누군가에게 유괴되었다.

그녀의 기억이라곤 자신을 잡아 검은 자루 속에 집어넣은 커다란 손 같은 단편적인 이미지들뿐이다.

팔려온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지내던 그녀는 주인 노파가 죽자 가혹하게 자신을 부리는 아들 부부의 집에서 도망쳐 나와 프랑스로 떠난다.

하지만 자유를 얻은 이후의 삶 역시 녹록지만은 않다.

세상의 거친 탁류에 휘말려 미국으로, 다시 프랑스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삶을 찾아나가던 라일라는 마침내 황금 비늘을 반짝이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 고향 아프리카로 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