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차기 지도자인 시진핑 국가부주석은 춘제(설)를 앞두고 우주항공전문가인 쑨자둥 원사(院士 · 최고 과학자에게 헌사하는 칭호) 등 국가 원로 과학자 3명의 자택을 방문해 새해 인사를 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국가 지도자급 정치인이 과학자들에게 이런 예의를 갖추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오히려 과학적으로 풀어야 할 이슈마저도 과학자들은 소외되고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 문제는 이미 본말이 전도돼 정치인들의 이전투구장으로 변해 있다.

기초과학을 외면하고 과학자를 홀대하는 이런 분위기는 국가 과학지력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노벨과학상 수상자 '0(제로)'의 배경이다. 최근 정부는 글로벌 박사 펠로십,노벨 생리의학상 프로젝트 등 젊은 과학자들에게 연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지원하는 제도를 잇달아 내놨다. 하지만 구조적 문제 해결과 분야별 특성에 따른 전략적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전시성 행정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수십년 한우물 파야 노벨상 탄다

노벨과학상이 처음 수여된 1901년부터 작년까지 수상자들을 보면 미국과 유럽 등 서구 국가 출신이 절대 다수다. 특히 2차대전을 기점으로 이전에는 유럽 국가,이후에는 미국이 상을 독식하는 양상이다. 지금껏 미국인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는 82명,화학상 수상자는 60명으로 가장 많으며 특히 생리의학상은 94명으로 압도적이다. 아시아권 국가로는 일본이 독보적인 가운데 인도가 노벨물리학상,화학상 수상자를 한 명씩 배출했고 중국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를 두명 냈다.

최근 대지진과 쓰나미로 초토화된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일본 과학기술에 대해 일부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천재지변의 상황에서 기술적 대처와 과학지력은 엄밀히 말하면 다른 문제다. 일본은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노벨물리학상을 처음 수상한 이래 2008년 난부 요이치로 등 3인 공동 수상까지 총 7명의 물리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화학상은 1981년 후쿠이 겐이치가 폴란드 태생 미국인과 함께 수상한 이래 작년 네기시 에이이치,스즈키 아키라까지 총 7명의 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또 비서구권으로는 유일하게 1987년 도네가와 스스무가 노벨생리의학상을 처음으로 수상했다.

일본의 노벨과학상에 대한 전략적 접근은 탄소나노튜브(CNT)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일본은 1991년 NEC의 이지마 스미오 박사가 CNT를 개발한 이래 줄곧 노벨과학상 수상을 노리고 있다. CNT와 유사한 탄소 기반 신소재인 '풀러렌'과 '그래핀'이 각각 1996년 화학상,2010년 물리학상을 받은 것을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큰 대목이다. 박승빈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는 "일본은 될성부른 분야에서 먼저 업적을 쌓으면 수십년간 그 분야에 인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이것이 결국 노벨과학상 수상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우리는 왜 못 받나

SCI 논문 분석과 함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가장 정확히 예측하고 있는 정보서비스기업 톰슨 로이터(Thomson Reuters)의 데이비드 펜들베리 수석 분석가는 "노벨상 수상은 한 국가가 최소한 20~30년 동안 안정적으로 기초과학 인프라에 투자하고 우수 과학자들을 지원해야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근대화 이후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 몰두하느라 세계 선도 수준 연구를 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덧붙였다.

일본 문부과학성 분석에 따르면 1986~2006년 노벨과학상 수상자 137명 중 절반에 가까운 66명은 30대 때의 연구 성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는 젊은 신진 기초과학자가 초반 집중적인 지원을 통해 세계 수준의 과학적 성과를 내고,해당 분야에서 한우물을 파면서 수년~수십년에 걸쳐 인류사회와 산업에 기여하거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할 때 노벨과학상 수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임지순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기초과학을 하면 사회에서 별종,낙오자 취급을 하는 분위기가 문제"라며 "기초과학을 해도 국가에서 많은 지원을 받고 좋은 일자리도 가질 수 있다는 인식을 젊은이들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함께 'G2' 슈퍼파워를 형성하고 있는 중국의 최고 핵심 지휘부인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9명 가운데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 총리,시 부주석 등 7명이 이공계 출신이다. 또 내각의 40% 이상,관료의 70% 이상이 엔지니어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작년 10월 기준으로 40개 중앙행정기관 68명의 장 · 차관 가운데 이공계 출신은 소방방재청장과 교과부 2차관 등 2명에 불과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특별취재팀=남궁덕 과학벤처중기부장(팀장),이건호(사회부) · 손성태 (과학벤처중기부) 차장,주용석 · 서기열(경제부) 이정호 · 송형석(산업부) 이해성 · 남윤선 · 심은지(과학벤처중기부) 김일규(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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