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2년차로 두 자녀를 두고 있는 직장인 K씨(42).그는 장기전세주택(시프트)에 들어가기 위해 무주택을 고수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이후 집값이 떨어지는 것을 직접 목격한 터라 주택 구입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K씨는 "전셋집 보증금에 연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5년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시세차익도 기대하기 힘들어 계속 전세로 눌러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두드러지는 '수요초과'

A씨처럼 주택 구입을 망설이는 세입자들이 크게 늘면서 최근 주택 임대시장에 '수요 초과'가 두드러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작년 이사철부터 계속 심화되고 있는 전세난 원인 가운데 하나로 시세차익을 얻기 어려워진 부동산 시장을 꼽고 있다. 매매로 전환되는 세입자는 줄어들고 신혼 부부 등 신규 전세 수요는 이어져 전세 수급불균형이 초래됐다는 것이다.

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버스에 올라 타는 사람들은 많은데 내리려는 사람이 없다는 게 요즘 전세난의 특징"이라며 "웬만해선 갈아 타려는 사람이 없어 구조적으로 버스가 미어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에 현 정부 들어 장기전세주택 보금자리주택 등 값싼 주택에 거주할 수 있는 대안이 등장하면서 다른 주택 구입을 미루거나 꺼리는 현상도 두드러지는 추세다. 예컨대 수도권 2기 신도시 등에선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고 있지만 주변 전셋값의 80% 이하에 최장 20년간 거주할 수 있는 시프트 청약에는 매번 10 대 1 안팎의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눌러앉기'도 급증

민간 건설업체가 공급하는 아파트보다 분양가가 훨씬 낮은 보금자리주택에 당첨되기를 기다리느라 전셋집을 전전하는 이른바 '눌러앉기 세입자'도 늘고 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보금자리주택은 본청약 이전에 신청할 수 있는 사전청약 방식이 도입되다 보니 실제 입주할 수 있는 기간이 1년 이상 더 길어진다"며 "아무래도 이런 수요들이 전세난에 직접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가(自家)에 큰 관심이 없는 1~2인 가구 증가도 소형 임대수요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이처럼 전세 수요가 급증한 상황에서 아파트 입주물량이 급감하는 올해와 내년에는 전셋값이 더욱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입주물량은 지난해 16만8144채에서 올해 10만8573채로 35%가량 줄어든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