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어놓은 돈 5억원을 날리는 것은 괜찮은데 추가로 물어줘야 할 돈이 10억원이 넘습니다. 외국으로 도피하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

12일 오전 9시 서울 광화문의 한 오피스텔에서 만난 전업투자자 장모씨(45).평소엔 오전 7시부터 미국 주식시장과 환율,채권시장을 점검하고 컴퓨터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그였지만 이날은 아침부터 술에 취해 있었다. 책상 곳곳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담긴 종이컵과 빈 소주병들이 놓여 있었다. 전날 옵션만기일 후유증이 어느 정도 심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5년 동안 투자하면서 깡통도 여러 번 차 봤지만 이번처럼 당하긴 처음입니다. 10분 만에 전 재산을 날리고 빚 10억원만 남았습니다. 재기 불능입니다. 재산을 압류하겠죠.겨울에 아내와 아들이 길거리로 내몰릴 걸 생각하니…."

장씨는 3년 전부터 옵션에 뛰어들었다. 투자금 대비 수익률이 높은 옵션투자가 그저 매력적으로만 보였다. 주식 투자로 10% 수익률을 올리는 게 버겁지만 옵션은 하루에도 몇 십배 수익을 낼 수 있어서다. 초기에는 여느 초보 투자자처럼 안전운행이었다. 적은 돈으로 옵션 매수만 한 것.

깡통을 차기도 했지만 운 좋게 5억원의 종잣돈을 만들고 투자에도 자신감이 생긴 장씨는 올초부터 옵션 매도를 병행한 게 화근이었다. 투자금액이 적을 때는 예수금이 부족해 엄두를 못냈지만 그래도 쏠쏠한 수익을 챙겨왔다. 전날도 평소와 마찬가지였다.

"전날 장 마감 전 코스피200지수는 254.62였어요. 풋옵션 252를 계약당 3000원(0.03)에 2500계약을 했거든요. 750만원을 먹으려다 10분 만에 147배를 물어야 할 판이죠.저뿐 아니라 평소 알고 지내던 개미투자자들도 연락이 안 돼요. 증권사가 당장 손실액을 청구할 거고 워낙 크게 터지다 보니 갚을 방법이 없죠.다른 사람 명의로 재산 빼돌리고 외국으로 도망가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

전날 주가 폭락의 후유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투자한 금액만 잃는 옵션매수와 달리 옵션매도는 손실액의 상한선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오늘부터 증권사들은 개인투자자들에 대한 손실 청구에 나섰다.

계좌에 손실금을 입금하지 않으면 다음 수순은 재산압류다. 투자자는 한순간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게 된다. 팍스넷 등 증권전문 사이트엔 전날 풋옵션매도로 넋이 나간 개미들의 한숨과 자조가 넘쳐나고 있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