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최북단 헤이허(黑河)시.9일 꽁꽁 얼어붙은 시 인근 와뉴 호수 위를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폭스바겐 GM 등 7~8개 브랜드의 차량 20여 대가 질주했다. 이날 체감온도는 영하 30도 안팎.국내 2위 자동차 부품업체인 만도 연구원들이 70~80㎝ 두께로 언 호수 위에 원형과 S형 등 다양한 트랙을 만들어 놓고 첨단 신기술을 시험했다.

◆자동 주차 기술 첫 국산화

만도는 이달 초 헤이허 동계연구센터를 신축했다. 사무실만 2개 층 1725㎡ 규모에 60여 명의 연구원들이 근무 중이다. 인도 출신 2명도 소프트웨어 제어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만도가 최저 영하 40~50도까지 떨어지는 이곳에 시험장을 세운 것은 차량 실험 장비를 극저온 환경에 노출시킨 상태에서 미끄러짐 방지 성능 등을 검증하기 위해서다.

차항병 만도 중국연구소 사장은 "와뉴 호수 전체를 30년간 장기 임대한 덕분에 델파이 TRW 등 경쟁사보다 훨씬 큰 규모의 동계시험장을 갖게 됐다"며 "글로벌 경쟁사보다 앞선 기술을 저가화하는 게 최대 목표"라고 말했다.

만도는 헤이허 연구센터에서 'SPAS'라고 불리는 자동 주차 보조장치의 마지막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SPAS는 차량에 부착된 총 10개의 초음파 센서를 활용해 자동으로 평행(직렬) 및 직각(병렬)주차를 가능하게 해 주는 장치다. 운전자는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변속기만 조절해 주면 좁은 공간에서도 손쉽게 주차할 수 있다. 올 여름 강원도 원주 공장에서 SPAS를 생산,하반기에 출시될 현대차의 준중형 신차에 국내 처음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무인(無人)자동차 시대 연다

만도는 동계연구센터에서 차량이 목적지까지 스스로 운전하는 무인자동차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지능형 자율차량(IAV) 개발 프로젝트로,'시속 50㎞ 이하'나 '천천히'와 같은 교통 표지판을 읽고 분석하며 장애물을 인식할 수 있다. 위성항법장치(GPS)와 레이더,카메라 등을 활용해 앞선 차량과 정보를 수시로 교환,오차 없이 앞 차의 주행 경로를 따라 달릴 수 있다.

구본경 수석연구원은 "당장 실용화하기엔 무리가 있어도 무인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기반 기술을 확보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도요타 리콜 사태로 전자장비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이런 점까지 감안해 오작동 가능성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도는 무인차량의 초기 기술을 적용한 적응순항 제어장치(SCC 스톱&고)를 하반기부터 양산한다. 연말 출시되는 현대차의 그랜저급 신차에 첫 장착하기 위해서다. 적응순항 제어장치는 레이더를 이용해 전방 차량과의 거리를 계산하고 속도 및 차간 거리를 자동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최장 180m 떨어진 차까지 감지할 수 있으며 앞 차와 보조를 맞춰 스스로 멈췄다가 재출발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술로 승부한다"

헤이허 동계연구센터 내 사무실에는 '학여역수행주'(學如逆水行舟)라고 쓰인 고(故) 운곡(雲谷) 정인영 명예회장의 친필 액자가 걸려 있다. '배움은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처럼 해야 한다'는 뜻으로,연구개발에 매진할 것을 강조한 내용이다. 만도는 '기술 제일주의'를 내세웠던 정 명예회장을 기리기 위해 연구센터 입구에 그의 흉상을 세웠다.

헤이허(중국)=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