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의 목소리》를 집었들었을 때 첫 느낌은 필진이 무척 화려하다는 것이었다. 다섯 명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와 세 명의 미국 행정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등 최고 전문가들이 망라된 저자 목록을 보면 어떻게 이들의 글을 한 권에 모을 수 있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분야와 주제 또한 저자들의 경력만큼이나 광범위하고 다채롭다. 제1부인 국제금융과 부동산,2부인 미국의 재정적자와 세제 개혁 정도까지는 이런 제목의 책이라면 가졌을 만한 주제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내용마저 당연하거나 뻔한 것은 아니다. 부동산 버블과 같은 시사적인 주제는 물론 국제적 자본이동 문제나 재정적자와 같이 시효가 없는 주제,세제 개혁의 문제처럼 일반인들이 잘 접해보지 못한 주제까지 다루고 있어 그 자체로도 시야를 넓혀준다.

그런데 3부를 넘어가면 이 책이 보여주는 경제학적 논의의 폭을 실감하게 된다. 3부는 전쟁,고용,질병,지구 온난화를 다루고 있다. 얼핏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주제지만 이 모두는 세계화의 이면이라는 하나의 큰 주제로 수렴된다. 4부는 사회 보장과 복지정책 관련 내용을 담고 있으며 5부는 하나의 부로 모으기 곤란했을 듯한 여러 주제들을 녹여냈다. 예를 들어 기부,대학의 경제적 가치,테러리즘,사형제도,심지어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대파됐던 뉴올리언즈의 복구 문제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과 정책 대안이 논의되고 있다.

저자들은 경제학과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이는 주제들을 언급할 때에도 사안을 파악하는 시각,가능한 해결 방안을 만들어 내는 접근 방식에서 경제학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예를 들어 테러리스트가 될 경우의 기회비용이 충분히 높다면 젊은이들이 테러리스트가 되기를 꺼릴 것이라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테러리즘에 대한 대응 방안이 만들어지는 식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사형제도에 대한 논의에서 사형이 종신형에 비해 비용 측면에서 과연 더 나은 점이 있는지,살인범을 사형시킴에 따라 피해자 가족과 친지들이 얻을 효용과 사형수의 가족,친지들이 잃어버릴 효용의 크기는 어떤지를 비교하는 식이다.

굉장히 무겁고 심각한 주제와 결론에 비해 그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이나 문장은 어렵지 않다.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다소간의 전문 용어만 알고 있다면 큰 어려움이 없다. 경제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했던 사람이라면 오히려 너무 평이한 문장들로 이뤄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경제학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이라 할지라도 옆에 사전이나 참고서를 펼쳐두고 전문 용어를 가끔 찾아가면서 읽는다면 그리 큰 부담은 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이 책의 장점이 한 번 더 드러난다. 어렵고 복잡한 논리,수식,까다로운 증명 등을 하나도 쓰지 않아도 중요하고 심각한 현안을 다룰 수 있다는 것,나아가 그럴듯한 정책 대안을 고민하고 제안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단점을 굳이 하나 지적하자면,미국 정부의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국도 아닌 한국의,게다가 정부 고위 관료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이라면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거의 무의미한 주제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책이 지닌 진짜 가치는 책에 들어있는 어떤 정책 제안이나 문제 해결 방안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저자들이 왜 그런 문제 의식을 가졌는지,어떻게 방대한 여러 현안에 대한 경제학적 대안을 찾아 나가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 이 책의 진짜 가치가 있다.

따라서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저자들의 합리적 사고 과정을 배울 수 있다면 앞으로 어떤 분야의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더라도 주어진 문제를 헤쳐나가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런 점에서 일반인 독자에게도,전공을 불문하고 일독을 권한다.


서기만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