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구상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은 영원속의 한 점…온전히 비워야 얻는다

2004년에 타계한 시인이 투병 과정에서 '영원이라는 것은 저승에 가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이 곧 영원 속의 한 과정'이라는 유언과 함께 남긴 시다. "내 사상을 가장 잘 담은 시"라는 그의 말처럼 인간 존재와 우주를 아우르는 진리의 명편이다.

이 시를 읽다보면 가난한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떠오른다. 일광욕을 위한 한 뼘의 햇살이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갈망보다 더 소중하다고 역설했던 디오게네스."적게 구하라,그러면 얻을 것이요 만족할 것이다. 많이 구하라,그러면 네 갈망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로도 유명한 그는 저승 가는 길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다시 만났군.정복자와 노예가 말이야" 하자 이렇게 말했다. "네.정복을 향한 열정에 사로잡혔던 노예와 모든 열정과 욕망을 정복한 제가 말입니다. "

세계의 지배자와 '풍요로운 빈자'의 대화는 '영원 속의 이 순간'이 어떻게 '신비의 샘'으로 치환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강물의 한 방울이 '산골짝 옹달샘'과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인 오늘.'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사는 것이 곧 '마음을 비운 삶'이자 '영원에 합당한 삶'이다. 그래서 시인은 지금,바로,여기를 '신비의 샘'이라고 노래한다.

눈앞의 욕심이나 허명에 매달리지 말고 과욕의 겉꺼풀을 벗어던질 때 '날마다 새롭게 솟는 옹달샘과 영원히 마르지 않는 강물'의 풍요가 찾아온다. 비울 줄 아는 사람이 얻을 수 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