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출산 줄었는데 가사.육아 급증

비경제활동인구는 한국 실업 통계의 판도라 상자다.

한국의 실업률은 여타 선진국에 비해 낮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여성.청년.노년층 등 취업 취약계층이 경기가 어려워지면 아예 취업 시도조차 하지 않고 비경제활동인구로 편입돼 버린 데 따른 착시효과다.

비경제활동인구 안에는 최근 해고 당한 후 울며 겨자먹기로 육아.가사로 돌아선 30대 비정규직 여성, 원서는 아예 내보지도 못하고 취업준비만 하는 대학졸업생, 휴.폐업 후 창업은 꿈도 꾸지 못하는 중년층 자영업자, 이유 없이 그냥 쉬는 계층들이 모두 포함돼 있다.

◇ 낮은 실업률의 비밀..비경제활동인구
29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통계청에 따르면 OECD가 표준화한 한국의 1월 실업률은 3.3%로 전체 회원국 중 네덜란드(2.8%)를 빼면 가장 낮았고 OECD 회원국 평균(6.9%)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다.

스페인의 실업률이 14.8%로 10%가 넘는 것을 비롯해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7.6%)은 물론 벨기에(7.2%), 캐나다(7.2%), 덴마크(4.3%), 핀란드(6.6%), 프랑스(8.3%), 독일(7.3%), 아이슬란드(8.8%), 일본(4.1%) 등도 우리나라에 비해 높은 실업률을 기록했다.

고용시장에는 찬 바람이 불고 있지만 실업률이 다른 주요국에 비해 크게 낮게 나타나는 것은 어려워진 고용사정에 좌절하거나 직장에서 내몰린 이들이 실업자가 아닌 비경제활동인구로 대거 편입되기 때문이다.

실업률은 15세 이상의 경제활동인구(취업자+실업자) 가운데 실업자의 비율을 말한다.

통계청은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했지만 일을 못한 사람을 실업자로 분류하고 있다.

반면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이들은 실업자가 아니라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실업률 계산에 반영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경제활동인구 증가폭이 크다 보니 실업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게 나타난다는 지적이다.

실제 2월 기준 15세 이상 인구는 3천990만 명으로 전년 동월에 비해 47만3천 명(1.2%) 증가했지만 경제활동인구는 오히려 3만6천 명(-0.2%) 감소했다.

같은 기간 비경제활동인구는 무려 50만9천 명(3.2%) 증가하면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 사실상 백수 358만명..사상최대
비경제활동인구에는 공식 실업률에 잡히지 않는 사실상의 백수 250만 명 가량이 추가로 집계된다.

우선 올 2월 기준으로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쉬었음'에 해당하는 사람은 175만2천 명이다.

아프거나 취업이 어려울 정도로 나이가 많지 않지만 취업할 생각이나 계획이 없는 이들이 '쉬었음'으로 분류된다.

'쉬었음'이 이처럼 많은 것은 관련통계가 작성된 이후 두번째다.

취업준비자는 56만8천 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구직시도를 아직 하지 않은 말 그대로 순수한 취업준비자이기 때문에 비경제활동인구로 포함되지만 잠재적 실업자로 분류할 수 있다.

비경제활동인구 중 '구직단념자' 항목에 체크한 16만9천 명도 '백수'로 분류할 수 있는 계층이다.

경제활동인구 중에도 사실상 백수로 분류할만한 계층들이 상당수 있다.

92만4천 명이 실업자로 분류돼 있고 주당 18시간 미만 취업자 중 추가 취업 희망자 17만1천 명은 취업자로 분류돼 있지만 하루에 1~2시간 아르바이트에 불과해 백수에 더 가깝다.

이들을 합산하면 총 358만4천 명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1월 이후 최고치다.

이외에 48만5천 명의 일시휴직자 중 일감이 없어 일시적으로 일을 쉬는 사람들까지 감안하면 백수는 실질적으로 40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 결혼.출산 줄었는데 가사.육아 급증?
사상 최대를 기록한 2월 비경제활동인구(1천623만3천 명)를 활동상태별로 보면 '육아'로 분류된 이가 171만7천 명으로 전년 동월에 비해 10만3천 명(6.4%) 증가했다.

가사를 돌본다고 답한 이는 578만9천 명으로 1년 새 15만8천 명(2.8%) 늘어나면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혼인 건수가 전년 대비 4.6% 감소한 32만7천700건에 그쳤다는 점, 인구 1천 명당 신생아 숫자를 뜻하는 조출생률이 2007년 10명에서 지난해 9.4명으로 감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갑자기 육아나 가사에 종사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점은 경기 요인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높다.

즉 최근 비정규직법 등 사유로 해고당한 30대 여성 임시.일용직들이 비경제활동인구의 가사.육아로 편입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연로'를 이유로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 이들도 2월 기준 156만8천 명으로 1년 새 7만6천 명(5.1%) 늘어났다.

비경제활동인구 분류상 '연로'는 일정 나이를 기준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본인의 주관이 개입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실직했거나 휴.폐업한 중년층 이상의 자영업자들이 실업자보다 연로를 핑계로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2월 기준 취업준비생(취업을 위한 학원.기관 통학+비통학 취업준비)은 56만8천 명으로 전년 동월에 비해 3만9천 명(-6.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 구하기가 난망한 상황인데다 취업준비에 드는 비용에 부담을 느낀 이들이 '쉬었음' 등으로 옮겨가면서 그동안 증가세를 보이던 취업준비생은 오히려 감소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한국개발연구원 김용성 연구위원은 "최근 비경제활동인구 중 육아.가사.연로가 수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직장에서 해고된 여성이 구직을 하거나 휴.폐업한 자영업자가 새로운 창업을 위해 비용을 지출하는 것보다 아예 구직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서울연합뉴스) 박대한 박용주 기자 pdhis959@yna.co.krspee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