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부터 뜻밖의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자기 회사 모든 임원들에 대해 헤드헌팅회사가 임원급을 채용할 때 실시하는 평판 조회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평판 조회라는 게 꼭 채용할 때만 실시해야 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면서 "평판 조회를 통해 회사의 주요 임원을 한번 평가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현직 임원 모두를 대상으로 일제히 평판을 조회할 경우 부작용이 클 것이라며 만류했지만,그는 마지막까지 평판 조회를 통한 임원 평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 사장이 평판 조회를 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임원들의 리더십 실상을 파악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회사가 방침을 정하면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그가 느끼기에 자기 회사의 경우 조직의 움직임이 심각할 정도로 더뎠고 때론 다른 방향으로 향하기도 했다. 그는 이 같은 원인이 임원들의 리더십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평판 조회를 통해 이런 임원들을 걸러내고 싶어했다.

CEO들이 임원에 대해,혹은 임원들이 부장들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 중 상당수가 이렇게 조직의 결정을 구성원들이 따르지 않는 데 있다. 구성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결정은 의미가 없거나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경영진은 결정할 때 신중을 기하고,일단 내린 결정은 어떻게든 이행하려고 애를 쓰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 중 하나가 임원이나 중간 간부들의 역할이다. 조직이 방침을 정하면 이를 이행하는 것은 대부분 임원과 중간 간부들의 몫이다. 그런데 변경된 방침을 구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문화나 관행을 바꾸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임원과 간부들은 조직 구성원들에게 그 방침이 왜 정해졌는지,새로운 방침의 효과와 부작용은 어떤 것인지 등을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또 구성원들이 따라오지 않을 경우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행을 독려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임원과 중간 간부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적당히 설명하고,조직 구성원이 이행하지 않아도 그냥 넘어간다. "열 번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잭 웰치의 말을 새겨듣지 않는다.

특히 구성원들이 새로운 방침을 이행하지 않을 때는 그것을 지적하기 위해 '싫은 소리'를 해야 할 경우가 많은데,많은 간부들이 이 '싫은 소리'를 싫어하고 부담스러워하면서 방침을 따르지 않는 조직원들을 방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업에서 임원이나 중간 간부들이 갖춰야 할 자질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싫은 소리'를 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조직이 어떤 목적지를 향해서 노를 저어 가는데 다른 곳으로 노 젓는 것을 방치한다면 배가 제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어렵다. 리더는 모든 조직 구성원이 한 목적지를 향해 노를 저을 수 있도록 독려하고 또 독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