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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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남 씨는 아내 심사숙 씨와의 사이에 딸 하나와 아들 둘희 이렇게 2명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성실남 씨는 선친의 사업을 물려받은 후 타고난 성실성 덕분에 회사를 급성장시킬 수 있었지요. 너무 성실한 것이 문제였을까요. 성실남 씨는 지방 출장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오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맙니다. 사망 당시 딸은 고2,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의 어린 나이였습니다.

성실남 씨가 남긴 재산은 자신이 오너로서 100% 지분을 소유한 비상장회사의 주식, 그 밖에도 아파트, 토지, 상가 등 꽤 많은 부동산이 있습니다. 상속세를 차감한 후의 평가액만 140억원에 이릅니다. 상속인은 아내 심사숙, 딸 성하나, 아들 성둘희 이렇게 3명입니다.

이제 심사숙 씨의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자녀들에게 거액의 재산이 상속될 경우 자녀들이 학업을 소홀히 하고 성년이 되어서도 무절제한 생활을 할 것이 걱정되었네요. 심사숙고한 끝에 심사숙 씨는 상속재산 전부를 일단 자신의 명의로 이전하기로 했습니다. 자녀들이 자기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공평하게 나누어줄 생각이었습니다.

성실남 씨의 전 재산을 배우자인 심사숙 씨가 일단 단독상속하는 내용의 상속재산분할협의서를 작성했고, 미성년인 자녀들의 친권자인 심사숙 씨가 자녀들을 대리해서 분할협의서에 서명했습니다. 언젠가는 아버지 재산을 분명히 물려받을테니 자녀들도 불만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구요.

그런데 2년 후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딸이 대학에 입학하여 성년이 되자마자 심사숙 씨를 상대로 자신의 상속분을 내놓으라는 부당이득반환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어린 자녀 걱정돼 대리 상속했다가 소송당한 엄마 [정인국의 상속대전]

친권자와 미성년 자녀 사이…이해가 상반되는 문제

이러한 경우라면 아래의 2가지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우선 친권자와 미성년의 자녀가 공동상속인일 경우에 친권자는 미성년인 자녀를 대리할 수 없습니다.

이 사건에서 심사숙 씨와 자녀 성하나, 성둘희 씨는 상속재산을 공동으로 상속받는 관계라서 이해관계가 상반됩니다. 우리 민법에서는 친권자와 자녀 간에 이해관계가 상반되는 경우라면 친권자는 자녀를 대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어요. 따라서 상속재산 분할협의를 하기에 앞서 친권자는 반드시 법원에 자녀들의 특별대리인 선임을 청구해야 합니다.
민법

제921조(친권자와 그 자간 또는 수인의 자간의 이해상반행위)
① 법정대리인인 친권자와 그 자 사이에 이해상반되는 행위를 함에는 친권자는 법원에 그 자의 특별대리인의 선임을 청구하여야 한다.

이해상반 여부를 판단할 때 친권자의 의도는 일절 따지지 않습니다. 이 사건처럼 설사 친권자가 자녀들의 이익을 위해 대리행위를 한 것이 분명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법원 1993. 4. 13., 선고, 92다54524, 판결]

민법 제921조의 “이해상반행위”란 행위의 객관적 성질상 친권자와 자 사이 또는 친권에 복종하는 수인의 자 사이에 이해의 대립이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친권자의 의도나 그 행위의 결과 실제로 이해의 대립이 생겼는가의 여부는 묻지 아니한다.
한 가지 더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미성년인 자녀가 여럿일 경우에는 각각의 자녀마다 특별대리인을 별도로 선임해야 한다는 겁니다. 자녀가 2명이면 특별대리인도 2명, 자녀가 3명이면 특별대리인도 3명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들 간에도 공동상속인으로서 이해관계가 상반되기 때문이지요.
민법

제921조(친권자와 그 자간 또는 수인의 자간의 이해상반행위) ② 법정대리인인 친권자가 그 친권에 따르는 수인의 자 사이에 이해상반되는 행위를 함에는 법원에 그 자 일방의 특별대리인의 선임을 청구하여야 한다.

자녀들 특별대리인 없이 행한 상속재산 분할협의 '무효'

심사숙 씨가 행한 상속재산 분할협의는 2가지 점에서 잘못되었습니다. ① 우선 심사숙 씨가 미성년인 자녀를 대리한 부분입니다. 심사숙 씨의 속마음이야 어땠건, 상속과 관련해서 심사숙 씨와 자녀들의 이해관계가 상반되기 때문에 특별대리인을 선임했어야 합니다. ② 자녀들 간에도 이해관계가 상반된다는 점 역시 고려했어야 합니다. 특별대리인을 선임할 경우에도 자녀 성하나와 성둘희의 특별대리인을 따로따로 선임해야 합니다.

어느 쪽에서 따져보건 심사숙 씨가 행한 상속재산분할협의는 효력이 없습니다. 집안을 산산조각 내버린 위 소송에서 결국 딸 하나 씨가 승소하게 됐습니다. 심사숙 씨에게는 딸 하나 씨의 상속지분에 해당하는 40억원 만큼 재산을 반환하라는 판결이 선고됐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정인국 한서법률사무소 변호사/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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