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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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가장 큰 명분은 시장의 실패입니다. 시장이 어떤 구조적 원인으로 인해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실패하는 현상을 '시장실패(market failure)라'고 합니다. 바로 이 시장실패 현상이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을 정당화하는 가장 큰 명분이 됩니다. 효율성 뿐만이 아닙니다. 어쩌면 더 큰 정부개입의 중요한 근거는 경제적 약자에게도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거나 사회적 위화감을 없앤다는 인간 본성에 내재한 형평성 확보의 욕구일 겁니다.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데서 정권의 존재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형평성을 추구하는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형평성과 효율성이라는 목표는 상호 이율배반적인 것이어서 함께 달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난 2월4일 발표된 공급대책 만해도 그렇습니다. 형평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형평성을 제고하지도 못하면서 효율성의 손실만을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이 일면서 3기 신도시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지 이틀 만에 1만2000 명이 서명했다고 합니다. 정부는 일정대로 추진한다고 하지만 이미 신도시로 지정된 지역의 주민들은 머리띠를 두르는 상황입니다. 고양이에게 어떻게 생선가게를 맡기느냐며 격앙된 분위기입니다.

비단 이는 신도시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공공직접시행 정비사업이라는 특이한 개발방식을 들고나온 서울 도심의 경우에는 더 큰 문제입니다. 토지소유주들은 이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할 경우 소유권을 공공에 넘겨야 합니다. 이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업철회라는 입장으로 돌아설 움직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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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평성을 제고 하는 정책들이 실패하는 중요한 이유는 어떤 상태가 형평성을 충족하는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는 점입니다. 사안마다 제각기 다른 의견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정치적으로 수렴해 일관된 정책 집행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정치인들은 형평의 제고와 효율의 저하 간의 균형을 잘 찾아내지도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경향이 강합니다. 정치인들의 궁극적인 관심은 유권자의 표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정책이 가져올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파급효과를 엄밀히 따지기보다는 현재 즉각적으로 나타날 결과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해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선언할 수는 있으나, 이를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을 찾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의미입니다.

2월4일 발표한 공급대책을 요약하면 2025년까지 수도권 약 61만가구 및 지방 약 22만가구 등 83만가구의 신규부지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2025년까지 공급을 해도 위험한 위기 상황에 땅을 확보한다는 겁니다. 이는 암환자에게 아스피린을 투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특히 이 신규 부지 확보도 계획입니다. 공급물량은 대부분 추계치이며 당연히 전제조건이 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간 정부와 민간에서 추진했던 사업들의 주민참여율을 근거로 공급물량이 산출됐을 겁니다. 주민참여율과 사업참여율은 천지 차이입니다. 5년 후 받아볼 성적표는 부실 그 자체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월4일 공급대책이 발표된 이유는 정부는 즉각적으로 나타날 결과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실패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부의 실패입니다. 정부실패란 시장실패를 개선하기 위한 정부개입이 오히려 자원배분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더 저해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정부의 실패가 일어나는 원인은 정부가 올바른 정책을 수립해 집행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낙후된 분야는 정치입니다. 가장 낙후된 분야가 시장을 제어하려니 잘될 턱이 없습니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면 바로 다음 날 이 대책에 대한 평가와 투자 방향이 SNS에 올라옵니다. 정부의 정보력은 민간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고 특히 현 정부는 민간을 활용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기에 잘못된 지식만 확대 재생산하는 중입니다. 공공부문의 경직성과 관료적인 성향, 그리고 공공복리라는 추상적인 정책목표도 문제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정부와 공기업조직 그리고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대다수 국민들의 이해와 일치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정부와 공기업은 조직의 존재가치를 높이고 권한과 예산을 늘리는 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민의 내 집 마련과는 관련 없는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큽니다. LH 직원들의 토지투기는 빙산의 일각일 따름입니다. 정치인들도 자기 이익을 챙기는데 정부와 공기업 직원을 탓할 근거와 명분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터무니없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지만 정부는 잘못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겁니다. 시장의 실패보다 정부의 실패가 더 위험한 이유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SWCU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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