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가 좀처럼 호황 국면에 접어들지 못하고 있다. 2003년 여름 장기 불황에서 탈출했지만 2년이 지나도록 느린 회복세가 지속되는 양상이다. 보통 사람들은 경기 회복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장기불황에서 벗어났지만 예전의 화려했던 영화를 되찾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6월 중순 장마철에 접어든 일본 경기를 현장에서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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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앞둔 지난 금요일 밤 11께 도쿄 신주쿠 가부키초. 아카사카와 함께 유흥가를 대표하는 가부키초 거리에는 금요일 밤인데도 곳곳에 빈 택시들이 줄지어 있었다.

1990년대 초 가부키초는 취객들로 흥청거렸다.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타려면 한두시간은 기다려야 했다는 주일 상사원들의 회고담은 이제 전설이 됐다.

가라오케를 운영하는 재일교포 S사장(48)은 “경기가 나아졌다고 하는데 예전에 비하면 여전히 손 님이 없는 편”이라면서 “올해는 작년 보다도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택시를 탄뒤 일본인 기사에게 요즘 손님이 많냐고 물어보자 “술을 먹어도 지하철을 타는지 자정이 돼도 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고 얼굴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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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도쿄에서 90KM가량 떨어진 치바현 소재 골프장. 도쿄에서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 예상 보다 골퍼들이 많지 않았다. 일본에선 6월이 최고 골프 시즌이다.

일본 골프장은 팀간 간격 7분을 정확히 지켜준다. 토요일이지만 사람이 적어 뒷 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골프장 회원권은 버블기에 6,000만엔(약 6억원)에 거래됐으나 요즘은 20만-30만엔이면 살 수 있다.

버블기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골프장들은 경영난이 심해지면서 도산하는 회사들이 속출하고 있다. 한국 회사들이 매입한 곳도 꽤 많다. 골드만삭스는 90여개를 인수해 현재 일본 최대 골프장 소유자다.



일본 경제는 2003년 4월말 닛케이 평균주가가 7,607엔으로 버블 붕괴 후 바닥을 찍으면서 장기불황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GDP(국내총생산)은 지난해 중반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는 등 회복세를 타지 못하고 있다.

도쿄대 경제학부의 이호리 토시히로 교수는 ” 경제불안의 배경이 됐던 금융권 불량 처리가 금년 봄 모두 끝나 올 하반기 이후 본격적인 회복세를 탈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비시장은 아직 불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 2대 편의점 로손은 5월 말 도쿄시내에 ‘스토아 100’1호점을 열고 1000엔 숍에 신규 진출했다.경기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중저가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100엔숍은 장기불황기인 90년 후반 전국적으로 급팽창 했다. 지난해 시장 규모는 약 4,500억엔 으로 10%이상 성장했다. 최근에는 99엔숍까지 등장했다.

반면 백화점 매출은 2000년 이후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미쓰코시백화점은 지난봄 수익이 나지않는 신주쿠점을 폐쇄하고 임대 점포로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경기 지표로 사용되는 남성 신사복 정장 매출은 4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이달 1일 시작한 쿨비즈(여름철 가벼운 정장)운동도 소비 확대를 위한 것이다.

외식시장도 마찬가지다. 일부 고급 호텔을 제외하면 외식 업체들의 매출은 늘지 않고 있다. 점심시간에 도쿄시내 공원을 찾아가면 300-400엔짜리 도시락을 먹고 있는 샐러리맨들이 많다.

얼마전 한 신문사에서 샐러리맨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월 평균 용돈은 4만엔 선으로 나타났다. 교통비와 점심값이 포함된 액수로 빡빡한 직장인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보여준다.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되지 않는 이유는 고용과 소득이 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경제연구소에 근무하는 미우라 연구원(34)은 입사 5년차지만 아직 후배가 없다.

대기업들은 최근 2년 연속 매출과 순이익에서 사상 최고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고용을 늘리는데 인색한 실정이다. 게다가 중소기업들은 아직 경기 회복세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적으로도 도쿄 나고야 등 일부 대도시만 그나마 경기가 좋은 편이다. 간사이(일본 서부지역)홍보센터(KIPPO)의 시미즈씨는 지역 경기를 묻자 “2,3년 전 보다 나아졌지만 경기 회복세를 느낄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익이 늘어나도 월급을 올려주는 회사도 아직 일부에 그치고 있다. 지난 1일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노동통계에 따르면 종업원 5인 이상 기업의 4월 급여액은 전년 동기 대비 0.3% 증가한 24만5,600엔으로 4년5개월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수명은 늘고 있지만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것도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일본의 개인 금융 자산은 1,400조엔을 넘는다. 현재 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고도 성장기의 주역인 60,70대들 이다. 이들은 보통 예금 통장에 현금만 2,000-3,000만엔씩을 갖고 있다.

이들이 돈을 풀어야 소비시장이 살고 일본경제가 본격적인 성장세를 타게 된다. 그러나 노년층들은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연금 제도 등의 불안때문에 노후 생활을 준비 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경제는 금년 1-3월기에 5.3%(실질 연율기준)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하반기 지진과 폭풍 등 자연재해로 인해 마이너스 성장을 한데 대한 ‘반동’이라는 분석이 많다. 경기회복을 위해선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요코하마시립대학의 국중호 교수는 ” 일본경제가 과거 전성기처럼 3-4%의 성장률을 달성하기는 상당 기간 어려울 것 “이라면서 “세계경제가 동반 성장해야 그나마 성장세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이 80년-90년대 초반까지의 호황기를 맞으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