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나는 스트레스에 강할까?
(분수를 알고 장사하자)
정말 나는 스트레스에 강할까?
사장의 잘못은 바로 현금의 손실과 연결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스트레스는 사람에 대한 야속함이다.



최근 핀란드로부터 발가락양말에 대한 주문을 받았다. 이전 같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매우 풀기가 어려운 일이 생겼다. 양말에 파란 색이 들어가는 데, 그게 한국 동일방직이나 전남방직처럼 한국 면사업체의 색상코드를 쓰는 게 아니라 외국의 색상코드인 Pantone 칼라북에서 나오는 코드이다. 그런데 이전처럼 염색을 하는 데 주문하면 1-2주일내에 실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염색공장이 그동안 많이 무너져서 시간이 더 걸리는 게 문제이다. 특히 켤레당 40그람내외하는 양말의 경우는 몇 천켤레라고 해봐야, 그 중에서 검은색처럼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고, 일부가 들어가는 실의 양은 많지 않다. 켤레당 고작해야 10-20그람. 그러니 염색공장에서도 생산효율이 나오지 않는 데, 시장의 수요는 많으니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나로서도 20-30킬로면 충분하지만 염색공장에서 빨리 빼려고 50킬로정도는 주문하면 나머지는 다음 오더까지 기다리는 동안 재고로 묶여두어야 하니 자금회전면에서도 반갑지가 않다. 그래서 바이어에게 색상을 한국면사업체의 칼라코드로 바꾸자고 요청을 하였다. 납기를 맞추기도 어렵고 자금도 어려우니 바꾸어달라고. 하지만 핀란드의 입장에서도 바꾸기가 어려운 게 그도 현지의 백화점으로부터 주문을 받은 것이라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발주처에 물어보아야 하고 쉽게 바꾸어주지도 않는다. 이미 받은 주문을 취소할 수도 없다. 이제부터는 순전히 염색공장에서 얼마나 빨리 소량의 실을 염색해주는 가의 문제이다. 위험부담이 크기에 가장 비슷한 한국의 색상코드도 같이 주문하였다. 애초에 주문을 받을 때부터 말했어야 하는 데, 미리 점검하지 못한 것도 잘못이지만, 설령 알았다고 하더라도 수정이 되었을 지는 가능성이 낮은 모델이었다. 왜냐하면 이전부터 나가던 모델을 그대로 달라는 바이어의 주문이었지만, 순전히 한국 염색산업의 변화 때문에 생긴 사정이라 뭐라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이번 오더에서는 동일한 모델을 아주 약간 다른 색상의 양말을 두배나 만들어야 했다. 어쨋거나 ‘바이어의 오더’라는 반가운 마음에 덥썩 주문 확약서를 보냈다가 수백만원은 허공에 뜨게될 지도 모르는 부담을 안게되었다. 이건 어디다가 하소연도 못한다. 만약에 내가 직원이었어도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건 아니다. 어차피 사장이 사인을 했을테니까, 직원인 나는 조금만 불편한 마음만 가지면 되었지만, 자기 주머니에서 현금이 날라가지는 않는다. 아, 피같은 수백만원.



사람은 살다보면 다 적당한 스트레스를 갖고 산다. 부자도 그렇고, 가난한 사람도 그렇고, 그런데 사장의 스트레스는 다른 사람들보다 강도가 심한 것같다. 뭐 꼭 사장이라기보다는 무슨무슨 ‘장’자들어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그렇다고 본다. 일이 잘될때야 사장이 가장 즐겁겠지만, 그래도 직원들만큼 그 환희를 오래 즐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잘되는 일을 계속 잘되거나 최소한 나빠지지 않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어느 분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직업이 ‘부(副)’자가 들어간 자리라고 하였다. 사장 바로 밑이라서 직접 실무를 맡지는 않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사장에게 결재를 올리기만하면 되니 책임을 질 일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깨달은 게 바로 자신이 사장이 된 다음이었다. 사장이 되니 일단 자기에게 올라온 결재는 늦출 수도 남에게 떠넘길 수도 없게 되고 보니 ‘부사장’이라는 직책이 얼마나 좋은 지 알겠다더라.



제조무역업을 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런데 후회를 많이 한다. 하지 말걸. 하기사 내가 제조업을 할 줄은 나도 몰랐다. 그저 상황에 맞추어 발전시키려다보니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후회를 한다고 벗어날 수있는 것도 아니다. 무조건 더 잘되게 만들어야 한다. 퇴로는 없다. 다행히 사정이 점점 나아져간다. 그래도 정말 싫을 때가 있다. 한단계, 한단계가 다 피말리고, 열받게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장사라는 게 혼자서는 못한다. 항상 사는 사람이 있고, 파는 사람이 있고 만드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 세가지를 다하는 사장이다. 양말의 원부자재를 사서 공장에 넘겨주어서 만들어서 외국에 수출을 해야하고, 새로이 시작한 ‘맨발신발’은 외국에서 수입해서 국내의 소비자들에게 팔아야 한다. 도대체 그 수많은 일들중에서 뭐하나라도 말썽없이 넘어가는 적이 없다. 사람들이 보니까 자기가 원하는 일은 빨리빨리 해달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면서 졸라대는 반면에, 내가 급해서 해달라고 하는 일은 ‘뭐 그리 바빠?’하면서 그야말로 속터지게 하는 게 보통이다. 그 사람들이 대부분 내 돈을 받아가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나에게 돈을 주는 사람은 내 사정을 또 잘 봐주지 않는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자기 맘대로다. 그러다가 그럼 같이 일못하고, 잘못될 수있다는 말을 아주 아주 강하게 해줘야 그 때서야 큰 인심쓰듯이 아주 쬐금 봐준다.



마음같아서 ‘안해!’하면서 확 때려치고 싶지만 아이 셋에 가진 것도 없는 가장으로서, 배운 거라고는 무역밖에 없는 나로서는 그나마도 할 수가 없다. 장사, 정말 싫다.



사장들중에 어느 순간에 확 늙어버린 사람들이 많다. 나도 정말 한달사이에 머리가 빠지고 하야졌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바이어들이 하도 속상하게 해서,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다 내리라고 큰 소리를 친 후에 그렇게 머리가 하애졌다. 사람에 대한 배신, 들어간 돈의 아까움, 쉽게 발을 뺄 수없는 한심함을 일상적으로 느끼면서도 일을 진행해야하는 구멍가게 사장은 스트레스를 잘 관리해야 한다. 내 주위에도 스트레스를 못이겨서 쓰러진 사람도 여럿있다. 그건 그 사람이 돈을 못벌어서 그런게 아니라, 월급받으면서도 고분고분하지 않은 직원, 푼돈주고서 큰소리치는 고객, 자기가 잘못하고도 인정하지 않는 거래처, 한푼이라도 깍겠다는 바이어와의 관계가 감당할 수있는 한계를 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장은 일상적으로 몰려드는 스트레스를 일상적으로 풀어갈 방법이 있어야 한다. 나의 스트레스 해결방법은 책이다. 책 속을 방황하면서 내가 잘 가고있는 지를 확인한다. 그래서 내가 주로 읽는 책은 경제.경영서이다. 난 골치가 아프면 서점으로 간다. 그렇다고 딱히 무슨 책을 읽겠다고 가는 적은 별로 없다. 그냥 간다. 그리고 책방에 꽂혀있는 책들 사이를 걷는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산다. 책을 읽는 것도 그렇다. 딱히 무언가를 얻겠다고 읽기 보다는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정말 부담없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항상 놀라움을 주는 것은 물리학 책이다. 수십억광년 떨어진 곳에서 수십억년의 차이를 두고 벌어진 일들, 벌어질 일들을 설명하는 책들은 비현실적인 상상을 하게한다. 요즘은 생물학에 대한 책도 읽는 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무래도 먹고사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경제.경영 관련분야이다. 그리고 읽은 것들을 정리하여 독후감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업무나 개인적으로 관련있는 분들에게 ‘필맥스 독서경영’이란 제목으로 이메일을 보낸다. 2003년 11월부터 정리한 독서목록에 따르면 현재까지 104개월동안 1202권, 매월 11.56권을 읽었다. 독서가 연장된 취미가 책을 쓰는 것이다. 책을 쓰는 것은 복잡한 머리를 잠시 업무를 떠나서 생각을 정리하고, 나를 정리하고 미래를 정리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처음부터 정확히 결론을 내리고 쓰는 게 아니라, 쓰다보니 그렇게 되더라는 식의 결론이 나기 일쑤이다. 글을 쓰는 동안에 글에만 몰입하는 게 아니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헤엄을 치고 다니고, 일에 대한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장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골프를 쳐도, 자전거를 타도, 달리기를 해도, 등산을 해도, 술을 마셔도 일이 떠나지 않는다. 나야 별달리 재주가 없으니 그냥 책을 읽고 쓴다. 그게 내 스트레스해소법이다. 그래서 난 원고를 쓸 때 머리를 싸매면서 쓰지 않는다. 이 분야에서는 난 아마추어니까. 쓰고 싶을 때 쓰고, 읽고 싶을 때 읽는다. 또 잘 쓰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꾸 보고 고치고 하기를 반복한다. 그게 잠시나마 나를 괴롭히는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수단이다. 그건 여행이나 운동처럼 사무실이란 장소만 벗어난다고 해서 일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없는 게 사장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쉬어야 한다. 그건 다른 생각을 하거나 사물을 보는 방법을 달리해보는 것이다. 그게 나에게는 책을 쓰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리 생각해보다도 책만큼 훌륭한 스트레스해소 방법은 없다. 특히 책을 많이 읽다보면 세상을 긍정하게 된다. 왜냐하면 세상 읽을 만한 책들의 99%는 해피엔딩이니까. 그래서 자꾸 책을 읽다보면 성격도 해피(happy)해지게 마련이다. 삶을 긍정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어차피 세상 일은 생각처럼 되는 경우가 드물고, 그 결과는 어차피 잘 될 텐데 뭐 그리 아둥바둥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적당히 스트레스를 즐긴다.



돌이켜보면 인생을 좀 더 즐기고 싶어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살면서 스트레스를 가장 적게 받을 때는 회사에 입사해서 쫄다구로 있으면서 내가 뭘 잘못해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만 하면 용서가 될 때였다. 이제는 다르다. ‘죄송합니다’라는 단어는 바로 ‘내 주머니에서 현금의 손실’을 의미한다. 그러고도 인간관계를 망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내 잘못이 아닌데 ‘미안합니다’를 해도 상대가 섭섭해하는 일도 흔하다. 잘 나가다가도 뒷골잡고 쓰러지지 않으려면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해소방법이 있어야 한다. 뭐 세상살이가 다 그렇지만, 일단 시작하면 ’확‘ 때려칠 수없는 사장하려면 남들보다 더 그렇다는 말이다.



사진 출처 : http://buffet.tistory.com/entry/스트레스해소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