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구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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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다시보기를 하다가 우연히 주인공의 '인생파업'이라는 말이 가슴에 확 꽂힌다. 수없이 많은 파업(전면파업, 동정파업, 총파업, 지명파업) 등이 존재하지만 ‘인생파업’은 노동전문가인 필자도 처음 들어보는 말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화물연대파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매스컴을 뜨겁게 달군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다면 노사 간 단체행동 과정에서 사용되는 투쟁수단인 파업이 노동문제가 아닌 우리의 인생에서 사용되는 것이 과연 적절할까? 인생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원칙적으로 파업(strike)은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노무제공을 거절하거나 작업을 중지하는 행위'를 말한다. 파업의 핵심은 자신이 제공하던 노동력을 더 이상 제공하지 않고 사용자의 지휘감독으로부터 벗어나는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의 투쟁수단이며, 결국 돈벌이를 스스로 정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생파업이라고 하면 '인생에서 일을 그만둔다'는 뜻도 되지만 '인생 자체를 그만 둔다'는 의미로 읽히기도 한다. 드라마에서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어디론가 떠나는 것으로 설정했지만 자칫 남아있는 인생을 포기한다는 오해가 생길 소지도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에도 ‘자살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있는데, 인생파업이 단순하게 하던 일을 그만두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그런 뜻으로 해석되었으면 좋겠다.

인생파업을 선언하고 자발적 백수가 된 청년이 과연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어디론가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온 힘을 다해 죽어라 뛰고 있지만 정작 왜 뛰는지 모르고 남들을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왜 사는지,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모르고 그냥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리라. ‘레밍현상’이라는 사회학적 용어에서 보듯이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따분한 인생을 살다보면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은 인생파업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먹고사니즘’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기가 어려울 뿐이다. 우리 삶에 정해진 법칙이란 없으니 마음 가는대로 해보는 것도 괜찮다.
사진=구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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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친구들은 조직(회사)이 싫거나 상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스스로 인생파업을 선언하기도 한다. 사회구조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가 원인일 수도 있다. 반면 조직(회사)을 떠나고 싶지 않음에도 희망퇴직 또는 명예퇴직, 그리고 정년퇴직으로 자신이 속해있던 조직에서 강제적으로 밀려나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인생파업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발성을 바탕으로 한다. 반대로 후자의 인생파업은 대부분 비자발성이 그 특징이다. 자발적인 인생파업은 추후 철회하고 복귀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비자발적인 인생파업은 복귀 자체가 어렵다는 차이가 있다.

자발적 인생파업이든, 비자발적 인생파업이든 일을 그만두는 것은 생존의 바탕인 돈벌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부모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지 못한 일반인들의 인생파업은 자칫 인생파탄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높다. 드라마에서는 어촌마을에서 좋은 친구를 만나는 행복한 마무리로 끝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슬픈 마무리를 염려해야 한다. 행복한 마무리가 되려면 인생파업 이전에 앞으로의 인생설계도를 먼저 그려야 한다. 순간적인 인생파업이 인생파탄으로 가지 않도록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인생설계도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는 왜(why) 사는지, 어떻게(how) 살 것인지, 무엇을(what) 할 것인지다. 오늘의 인생 숙제는 이 3가지를 정리하는 것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구건서 심심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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