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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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가 코앞이던 1999년 12월 IT 버블의 막바지에 미국 온라인증권사 E-Trade 증권이 한국에 진출하면서 기존 오프라인 모델로 수십 년 먹고 살았던 국내 증권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그로부터 한 달 후 2000년 1월 국내 최초의 온라인 증권사 키움증권이 출범한다. 훨씬 저렴한 수수료와 편리한 인터페이스, 무엇보다 인터넷을 통해 증권사 담당 직원을 거치지 않고 고객이 직접 주식을 사고파는 주문을 할 수 있다는 새로운 거래방식에 젊은이들은 환호하며 급속도로 가입자가 늘어났다.

당시 증권회사가 몰려있던 여의도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의식을 느끼며 대다수 증권사는 당장 망할 것 같은 위기감에 전전긍긍했다. 언론은 이구동성 머잖아 오프라인 증권사는 모두 망하고 온라인 증권사가 그 역할을 대체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21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 온라인 증권사 위상은 기대와 사뭇 다르다. 키움과 이베스트(이트레이드 증권)뿐인 온라인 증권사는 2021년 말 기준 국내 증권사 59개 증권사 매출 순위에서 키움증권이 9위 이베스트 증권이 14위에 머물고 있을 뿐 상위 5대 증권사는 모두 전통의 오프라인 증권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금융 산업에 대한 규제와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미국에서조차 거래 중개만을 전문으로 하는 증권회사는 많지 않으며 대형 IB 은행들이 월가를 주름잡고 있다. 미국 10대 투자은행(IB)의 규모는 온라인 증권사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2019년에는 미국 대형 금융회사인 찰스슈왑이 온라인 증권사 TD아메리트레이드를 260억 달러(약 30.6조원)에 인수 합병했고 가장 큰 온라인 증권사인 E-Trade는 2020년 모건스탠리에 인수되어 사라졌다. 당시 미 CNBC방송은 “온라인 증권사들은 거래 수수료 인하로 수익성 악화에 따른 실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찰스슈왑과 TD아메리트레이드, 모건스탠리와 이트레이드의 합병처럼 서로 파트너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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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11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중금리 대출을 표방한 P2P업체 8퍼센트가 출범했다. 그리고 한 달 후인 12월에는 세계 최초 P2P 기업인 미국 렌딩클럽(Lending Club)이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당시로는 거액인 10억 달러 규모의 IPO에 성공하며 국내 P2P 창업 붐을 몰고 왔다.

필자는 당시 개인 간 자금 대여와 차입을 온라인으로 중개하는 P2P 사업의 잠재력에 매료되어 P2P 사업 진출을 검토했으나 D증권 대표이사를 역임하신 S회장님이 껄껄 웃으시며 위에 거론한 온라인 증권사 사례를 말씀해 주시며 P2P 사업은 한때 유행에 그칠 뿐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사업이라는 조언을 면밀히 검토 후 사업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

2015년 P2P업체의 출범 당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던 이들 업체는 국내 고금리 대출시장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그로부터 7년이나 지난 현재까지 그럴듯한 성공을 거둔 P2P 업체를 찾아보기 힘들며 코스닥 상장 사례조차 전무한 실정이다.

오히려 P2P업체의 돌려막기 수법과 모럴헤저드로 인한 엄청난 투자자 피해만 양산했을 뿐이다. 또한 2020년 9월 기 등록된 124개 P2P업체 전체의 대출 총액은 누적으로 11조원 수준이고 연체율은 17%가 넘는다.

더구나 대출 잔액이 2.3조원에 불과하여 국내 저축은행 대출 잔액 110조원(2022.06)의 2%에 수준에 머물러 P2P 업계의 시장 규모는 금융기관으로 분류하기 조차 민망할 정도의 초라한 수준이다.

물론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인한 자유로운 경쟁이 어려운 것이 시장 확대의 가장 큰 저해요인이라지만 이는 투자자 리스크를 먼저 생각하는 금융당국의 관점이 세계 어느 나라나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새삼스러울 게 없다.

결국 금융 산업은 아무리 새로운 기술과 효과적인 방식이 도입되더라도 쉽게 시장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산업이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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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마차가 자동차와 기차로 바뀌는 산업혁명의 물결과 같이 획기적인 기술 개발에 따른 새로운 산업의 물결은 세상을 바꾸고 인류의 생활 방식을 변화시켜 왔지만 전통적으로 금융 산업에의 도전은 한때의 유행을 만들어 낼 수는 있어도 고착화된 기존 금융권을 뒤집는 변화를 가져오기는 매우 힘들다.

최근 4차 산업 혁명과 메타버스의 바람을 타고 암호화폐 바람이 거세게 불어 왔으나 팬데믹에 따른 경제 불황과 루나와 테라사태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인상으로 인한 암호화폐 가격의 폭락보다는 암호화폐 역시 금융 산업의 잣대에서 볼 때 위에 살펴본 두 가지 전례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어 결국은 대다수 암호화폐는 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기본적으로 금융 산업은 규제산업이다.

국가의 입장에서 국정 운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산업이 금융 산업이고 화폐의 발행과 유통 관리 기능은 국가 정책의 기본 토대를 이룬다. 따라서 아무리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시장 전망이 좋은 산업이라도 국가 경제의 관리 통제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거나 부작용이 예상되는 산업은 허용되지 않을 것이며 시장 진입과 대중화에 상당한 규제의 칼날을 들이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이미 수년전부터 세계 최고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전 직원의 60% 이상이 개발자라고 밝히며 스스로 금융회사가 아닌 IT 기업이라고 선언할 정도로 금융업 자체가 이미 뛰어난 첨단 기술력을 갖추고 있으며 스스로 시대의 흐름을 앞서가지 못하면 퇴출된다는 인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전 세계 모든 금융회사는 빠르게 변화하는 IT 기술을 적극 수용하면서 사용자 변화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변신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고 상당히 성공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새로운 기술적 진보를 금융권이 일반 기업보다 더 빨리 수용하고 시장을 앞서가는 경우도 가끔 보일 정도다.

거기에 더해서 금융 산업은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에 새로운 기술이 자신들의 텃밭을 침입하거나 위협을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정부와 힘을 합쳐 규제라는 올가미를 씌우고 기득권 지키는데 이골이 났으며 스타트업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고 기술을 탈취하며 자신들이 직접 해당 사업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버는 일쯤은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암호화폐의 발행과 ICO 그리고 플랫폼에서의 화폐의 기능 등에 대한 과거 금융권의 반응은 민감한 정도를 넘어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인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미국의 경우 온갖 로비를 통해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리브라 발행을 저지했으며 결국 메타의 자체 화폐 발행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각국 중앙은행은 상호 긴밀하게 협력하여 투자자 보호라는 미명아래 기득권을 보호하느라 정신이 없다. 따라서 금융 산업의 쌀이라 부를 수 있는 화폐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필연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기에 필자의 생각에 암호화폐는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CBDC에 밀려 대부분 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단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비롯하여 극소수의 가상화폐만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되며 대다수의 가상화폐는 스타벅스의 별쿠폰이나 아마존페이 그리고 각 플랫폼의 내부 결제수단으로 쓰리는 포인트로 그 역할이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2022.08,02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신근영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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