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이 아닌 성과로 말하라
[홍재화의 매트릭스로 보는 세상] 좋은 인격, 좋은 성과를 내는 사장이 되고 싶다
착하고 잘생기고 사교성 좋고 크게 성공한 #사장이 되고 싶다.
일단 앞의 3가지는 그런대로 된 것 같다. 내 노력이 아니라 부모님이 나에게 그렇게 물려주신 거다. 그런데 성공한 사장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어쩌면 사람 좋고 성공한 사장은 내 노력과 더불어 타인의 편견을 넘어서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약한 사람을 얕보고 착해 보이는 사람을 등쳐먹으려는 악인들이 사업의 세계에는 많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적어도 남에게 해는 끼치지 않으려고 애는 써야 한다. 그래야 남들이 나를 도와준다. 그러다 보면 운이 좋아질 날도 온다. 사업의 흥망으로 따지면 4수 정도하고 있다. 우울한 적도 많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힘차게 하자는 의미로 #vivame(비바미, 나를 힘차게)라고 브랜드를 만들고 세계 시장을 노리고 있다. #베어풋신발, #무지외반증 구두와 같은 독특한 시장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우리 신발을 사면서 ‘사장님이 잘되셔야죠!’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사장의인격을 다시 생각해본다.

“1명이 죽었을 때 100만 명이 슬퍼했지만, 100만 명이 죽었을 때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가 죽었을 때 애플에서 낸 광고로 기억한다. 누구는 삼성에서 이런 정도의 천재가 나올 수가 있는가 하고 비꼬는 글을 쓰기도 하였고, 나는 그래도 1명이 100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칼럼을 썼었다. 그로 인하여 세계의 IT산업 흐름이 어느 날 갑자기 확 바뀌었고, 수백만 명의 삶이 달라졌다. 그는 확실히 100만 명을 먹여 살리는 천재였다.

내가 스티브 잡스에 관심이 있는 것은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선하게 잘생겼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리고 나도 이게 칭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비즈니스를 하다 보니, 그 말에는 ‘당신, 그렇게 착해서 제대로 비즈니스를 할 수가 있겠어!’ 하는 의심도 같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맞다. 비즈니스란 착하게 하는 게 아니라, 남들과 협상을 하면서 해야 하는 것이라, 그 사람의 심성과는 별 관련이 없고, 남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고 비전을 세우고 일을 추진해가는 험난한 과정이다.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어쩔 수 없는 마찰과 오해들이 벌어진다. 그 과정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풀어가야 뭔가를 이루어낸다. 그런 면에서는 나에게 그런 칭찬이 오히려 그 반대로 들리기 시작한 것은, 너무 늦었다. 진작에 그런 말의 의미를 알았어야 했다. 그래서 내가 더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인간성은 누구에게도 호감을 주지 못하는 그야말로 괴팍하고 못된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많은 것을 이루었다.
다케우치 가즈마사가 쓴 ‘스티브 잡스의 신의 교섭력’을 보면 참 성질 괴팍한 그가 많은 사람의 영웅이 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어쨌든 ‘득(공로)과 덕(인격)’ 양쪽 모두 갖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일 뿐이다. 공로를 세우지 못한 호인(好人)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즈니스에서는 공로가 최우선이다. 또 자신의 공로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공로를 세우는 과정을 아는 사람은 가까운 관계자일 뿐, 세상은 전혀 모른다. 눈부시고 화려한 공로만이 세상 사람들의 평가 기준이다. 훌륭한 일을 하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고, 나머지는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 준다.” 그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여러 번 자기 것인양하여 일을 추진하기도 한다. 그에게 “처음에 누가 생각했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 아이디어가 좋다는 걸 알아본 사람은 ‘나’다. ‘그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스티브 잡스는 ‘돌파력과 끈기’를 모두 갖고 있다. 애플에서 쫓겨나고 픽사가 아카데미상을 받는 9년의 세월이 그것을 보여준다. 이 책을 보면서 그의 ‘이기적인 파괴력’이 부러웠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내 우유부단함을 고쳐서 ‘스티브 잡스처럼 남을 몰아세우며 일을 할 수가 있을까?’ 하고 스스로 질문해보면 난 역시 ‘글쎄’라는 대답이 나올 그것 같다.

난 나 자신도 삼국지의 ‘조조’보다는 ‘유비’ 같다고 생각하면서 흐뭇해한 적도 있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도 받으면서 좋은 일만 하니까. 그런데 막상 돌이켜보면 유비가 이루어 놓은 것은 별로 없다. 물론 대혼란의 시대에 그래도 삼국이라는 세 축 중의 하나를 이루었으니 대단하기는 하지만, 제갈공명과 휘하의 천하 명장들을 데리고도 통일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 우유부단함, 착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제갈공명도 그와 함께하기로 하면서 천운을 보니 ‘자기 뜻을 이루지 못하는구나!’ 하면서 탄식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유비의 인간성에 끌려 평생을 같이했다. 물론 삼국지에서는 유비가 악하게 행동해야 할만한 기회조차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 유비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조조’이고 싶다. 유비는 스스로는 성인군자였지만, 그 때문에 유비 대신에 악역을 해야 하는 ‘장비’ 같은 사람들이 필요했다. 나도 그렇다. 내가 뭔가를 하려면 ‘야야, 됐어, 네가 그런 말을 할 수나 있기는 해!’하면서 나 대신 나서주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에는 ‘나도 할 수 있는데….’하고 섭섭했지만, 돌이켜보면 사실이 그랬다. 대신에 조조 주변에는 조조를 대신하여 악역을 하는 사람이 기억나지 않는다. 스스로는 악역이지만, 주위 사람까지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결국은 조조를 기반으로 한 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였다. 그런 우유부단한 착함은 주변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업무적으로도 시기를 놓칠 때가 많다. 파나마에 있을 때 현지 직원의 행실이 무척 나빠 해고를 해야 했는데, 마침 상관이 귀국할 때여서 ‘떠나는 마당에 언짢은 일은 하지 마세요. 제가 하겠습니다’ 했다. 그러고 그 녀석의 어려운 사정을 봐주며 차일피일하다가 결국은 된통 당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그 녀석이 고마워하지 않았다.

황희정승의 일화, 하인 둘이 싸우는 데 양쪽의 말을 들어보고 이놈도 옳다, 저놈도 옳다 하니, 옆에서 보던 다른 종놈이 아니 어르신은 줏대도 없으신가요? 했다 한다. 그 말을 듣고는 황희정승은 그래 네놈도 옳다고 했다. 분명 그분은 세 명의 사정을 꿰뚫어 보는 이해력이 참 높으신 분이다. 그런데 만일 스티브 잡스가 황희정승처럼 했다면, 우리가 그의 애플에 열광하고, 그의 죽음을 아쉬워할까?

“사람들은 왜 잡스와 일하고 싶어 할까? 잡스와 일하면 ‘세상에 없는 멋진 물건’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멋진 물건을 세상에 내놓은 경험은 그 사람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려준다. 그래서 실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일수록 잡스의 포로가 된다. 잡스가 60세가 되어도 지금처럼 예리한 칼 그대로일까? 아니면 이해심만은 노인이 되어있을까?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가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추문 유발자로 이름을 날리는 것처럼 잡스도 언제까지나 날카로운 경영자이기를 바란다. 둥글고 온화해진 잡스는 더는 잡스가 아니다.”

난 아직도 등산하면서 나에게 ‘홍 사장님, 그렇게 착해서 일을 제대로 하실 수가 있나요?’라고 말해준 거래처 사장님께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 그건 나에게 나쁜 일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일을 이끌어 갈 때는 물불 가리지 않고, 온몸으로 모든 일을 헤쳐나가고, 내 생각을 거래처, 나의 직원이나 후배에게 어려워하더라도 강요할 수 있고, 늘 나무와 숲을 같이 보면서 사업을 하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처럼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밀어붙이고, 또 밀어붙이면 당하는 직원도 이를 악물고 해내고야 만다. 그런데 그런 치열함이 나에게는 부족했고, 그게 남의 눈에도 보였던 거다. 그런 착함이 술을 먹기에는 좋지만, 같이 일하기에는 불안하다는 그의 말뜻을 요즘은 두고두고 되새기도 있다.

사업가의 평판은 결과로 보여주어야 하지, 사람 좋다는 인격만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사장의 인격은 부하직원이 떠나지 않고 주변 사람이 나를 도와주는 보이지 않는 요소의 하나이다.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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