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호 칼럼] 神을 이기는 협상의 기술
 ‘데보라’라는 이름을 가진 처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유대인 여성으로 사회를 지탱하는 율법을 누구보다 잘 익히고 실천했다. 어느덧 성년이 된 데보라는 부모가 정해준 청년과 결혼을 하기로 했는데 결혼식 당일 밤에 그만 청년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몇 년이 지난 후 데보라는 아픈 기억을 잊고 새로운 청년과 결혼을 하기로 했지만 이번에도 결혼식 당일 밤에 죽고 말았다. 세 번째 결혼식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먼 마을의 한 청년이 데보라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데보라는 과거에 3명의 남자가 결혼 전에 사망을 했고 “당신도 그럴 수 있다”며 결혼을 거부했다. 하지만 청년은 “저는 지금껏 신실하게 신을 모시고 살아왔습니다. 신께서는 이를 잘 알고 계시므로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라고 장담했다.

청년의 용기와 강단에 부모와 데보라는 그 남자와의 결혼을 승낙했다. 결혼식 날, 이번에도 남자를 천국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죽음의 천사가 도착했다. 데보라는 이 상황을 예측하고 죽음의 천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지금까지 세 명의 내 남편을 앗아간 천사로군요. 하늘에 계신 신에게 이렇게 전해주세요. 저는 유대인으로서 유대의 율법서를 앞서 실천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아울러 율법서에는 남자가 결혼을 하면 일보다 가정을 우선하여 아내와 함께 있어야 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날 밤에 남편을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은 이런 가르침에 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께서는 제 남편을 데려갈 수 없습니다. 정녕 제 남편을 데려가신다면 저는 신을 피고로 하여 종교재판소에 고발하겠습니다.” 이에 놀란 천사는 당황했고, 천국으로 돌아가 신과 이 문제를 상의했다. 이야기를 듣고 난 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데보라의 결혼을 허락했고 이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이 이야기는 유대인의 성전 탈무드의 한 일화다.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신은 인간의 목숨을 마음대로 앗아갈 수 있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자다. 일명 ‘甲’중에 ‘슈퍼 甲’이다. 이런 권력자에게 데보라가 신을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의를 위한 용기와 당당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협상의 원리를 제대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데보라가 활용했던 협상의 원리는 ‘주관적 기준’이다. 인도의 민족 해방 운동자인 마하트마 간디와 미국의 흑인 해방운동을 이끈 마틴 루터 킹도 ‘주관적 기준’을 활용해서 억압받던 사람들에게 자유를 선물했다. 간디는 인도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들은 문명화된 영국인들입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차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 문명국인 영국이 지향하는 행동입니까?” 킹 목사의 협상법도 마찬가지다. “미국 헌법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 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세계제국 미국이 가진 힘의 원천인 미국 헌법의 탄생이유인가요?”

신을 설득시킨 데보라, 간디, 킹 목사의 공통점은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 대신 상대가 가진 주관적 행동, 기준, 근거를 제시하며, 그것이 지금과는 다름을 인지시켰다. 이처럼 상대의 주관적 기준을 활용하는 협상법이 효과가 있는 이유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심리가 강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말만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 일상에서 잦은 약속을 어기는 사람에게는 상대와 힘의 균형에서 낮아지기 때문이다.

글.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 네고시에이터(ijeong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