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는 책임지는 사람 아닌가?



이팀장은 인사실에서 조직을 담당하는 핵심인재였다. 매년 10월만 되면 이팀장은 암실에서   회사의 조직설계 및 임원인사를 준비한다. 각 사업본부장을 개별 방문하여 사업부 개편에 대한 의견을 듣고 경영환경분석, 경쟁사 동향, 회사 경영 현황, 임원 현황 등의 자료를 종합하여 4단계 (조직설계- 기존 임원 인사- 신규임원인사- 팀장인사)로 업무를 추진한다. 이팀장은 사업본부장의 의견을 취합하고, 분석 자료를 기반으로 조직개편안을 경영지원 본부장에게 보고하였고, CEO의 승인 하에 기존 임원 인사를 추진 중 본부장의 호출을 받았다. 본부장인 김사장은 금번 임원 인사에서 자신을 제외하라고 지시했다. 표면적인 사유는 개인 건강이었지만, 김사장이 5년 전 영업본부장으로 재임했을 때 의사결정을 한 사안이 문제가 되어 회사에 피해를 주었기에 책임을 지고 퇴직하겠다는 것이었다. 김사장이 영업본부를 떠난 것은 벌써 2년이 넘었고, 의사결정을 한 것은 5년이 넘은 일이었다. 이팀장은 “본부장님의 방향제시와 명확한 의사결정으로 현재 경영지원본부가 큰 성과를 창출하였고, 흩어졌던 임직원이 하나가 되어 더 큰 성과를 이루겠다는 열정이 대단한데, 본부장님이 그만두시면 이 본부는 무너진다.”며 간절히 재고를 요청했다. 김사장은 “경영자의 책임은 유한이 아닌 무한이며, 경영자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며 이팀장을 돌려 보낸다.

많은 기업에서 안전사고 또는 여러 불미스런 사고가 발생하면 ‘꼬리 자르기’를 한다. 현장에서 일하는 도급회사의 사원 3명이 사고로 사망했는데, 도급회사의 안전관리 미준수라는 이유로 공장의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공장 안전을 책임지는 부서 역시 우리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한다. 공장 안에서 일하던 사람이 3명이나 숨졌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도급회사의 작업반장이 전부다. 언론에 보도되고 정부의 감사가 시작되니 현장 감독자를 징계하였다고 발표한다. 현장 팀의 팀장부터 임원 그 누구도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한다. 이런 회사에서 직원들은 무엇을 배우겠는가?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생기면 숨기기에 급급하다. 빠르게 조치하면 쉽게 처리될 사건을 쉬쉬하면서 키우게 된다. 조직 내에서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불신문화가 팽배하고, 실패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하려고 하지 않는다. 남이 나의 일에 참견하면 참지 못하며, 자신 역시 남이 잘못하고 있어도 관여하지 않는다.

경영자는 자신의 말과 결정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경영자의 언행을 본받아 수 많은 미래 경영자가 육성된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오래 전에 한 사원하고 저녁약속을 했는데 당일 갑자기 CEO가 저녁하자고 호출하는 경우가 있다. 통상 해당 사원에게 전화하여 이런 일이 생겼다고 통보하듯 마무리하고 CEO와 함께 저녁에 참석한다. 물론 선약이 중요하니 무조건 지키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면 전화로 통보하여 마무리하는 것이 아닌 만나 정중하게 양해를 구해야 하며, 최소한 다음 약속을 잡아야 한다. 김사장은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경우, 반드시 찾아가 양해를 구하고, 다음 날 사과의 쪽지와 조그만 선물을 사서 미안했다고 말을 전한다.

사람을 잃기는 쉬워도 그의 마음을 얻기는 매우 어려운 법이다.



홍석환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