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만났던 재수생 신분의 재윤이의 모습은 마치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의욕이 없는 모습이었다.

종합병원의 수술실을 연상하게 하는 명국(命局)은 구궁(九宮) 그 어디에도 ON 스위치를 찾을 수가 없었다.

문괘공흉(門卦共凶)에 무가신(戊加辛)인 인성(印星)의 자리는 十中八九(십중팔구) 실패(失敗) 수라 부모 자리의 문제가 있음을 말해주니 역시나 어릴 적 부모가 이혼하여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스위치는 다름 아닌 부모 자리, 스승의 자리 공부 자리를 말한다.

명국(命局) 또한 들에 핀 야생화를 나타내는 전국(戰局)으로 이 같은 사주(四周)로 인생을 살아간다는 자체가 어린 재윤이에게는 모순이요, 더구나 자신에게 힘을 줄 스위치마저 꺼져 있으니 삶의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 것도 이해 못할 행동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명국을 살펴보았다.
신약(身弱) 한 사주에 살중신경이요 편관인 귀(鬼) 마저 명국을 장악하고 있으니 이는 탁명이요 가사난성(家事難成)이니 여자로서의 평안한 가정을 꾸미기란 애당초 기대를 버려야 한다.

행복을 위한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물론 없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자신을 알아줄 남자를 만나야만 하는데 그러기 위한 조건은 당연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명국 또한 스스로 가치를 높이는 인성의 자리가 무늬만 부모라 학업 역시 누군가의 힘에 의해 강제되지 않는 한 결과를 보기 어려우니 현실과 이상의 차이는 불 보듯 뻔 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자신의 스위치를 켤 수가 없다면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찾아야 한다.
다행인지 인연(因緣)이 닿아서인지 몰라도 상담(相談)에 임하는 재윤이의 자세는 자못 진지하였다.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과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평소 부모에 대한 인정과 자신 스스로 만들어낸 경험이 없는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특징들이다.

어린 나이에 벌써 자신의 꿈과 비전을 가지고 도전을 한다고 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많은데 다 자신의 명국에 타고난 인성 자리 즉 공부 자리의 유무(有無)와 호부(好否)에 따른 차이들이다.

전화선 너머 들려오는 재윤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밝다.

아이가 목적이 생기니 비록 일반대학이었지만 정말로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의학전문대학원 합격하여 다니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한다. 어느 부모가 기특하지 않을까. 아이가 가끔 수년 전의 일을 기억하며 필자와의 시간을 감사해 한다고 하니 공치사인 것 같지만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앞으로 의학전문대학원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어 자신의 타고난 명국(命局)대로 종합병원 수술실 스위치가 ON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