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향기요법(aroma therapy)이 나라를 들썩였다. 향기요법은 1920년 프랑스 화학자 르네 모리스 가트포세가 초목, 꽃, 뿌리, 씨앗 등에서 추출한 정유(精油)를 이용한 치유법을 지칭하기 위해 만든 용어다. 이 용어는 단번에 핫이슈가 되었다. 화원마다 허브가 불티나게 팔려 나갔고 넓은 평수의 허브농장을 지어 관광수입을 올리고 싶었던 지방세는 아낌없이 지출했다. 아로마가 건강증진, 질병예방, 미용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신뢰는 지금도 유효하다. 하지만 천연이든 인공이든 향 자체가 직접적으로 증상을 치유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허브가 그 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건강과 미용은 많은 이들의 관심사임에 틀림없다.

100세가 아니라 120세를 바라본다는 말이 나올 만큼 생명 연장의 가능성은 농후해 졌다. 문제는 얼마나 건강하게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육체의 건강은 당장 생활에 문제를 초래하니 누가 뭐라고 강조하지 않아도 자각 하는 힘이 강하다. 그런데 어쩌면 정말로 중요한 것을 잊고 사는 건 아닐까? ‘건전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 깃든다.’는 유베날리스의 말은 당시 검투사들이 몸에 기름을 바르고 힘자랑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두고 시대상을 비꼬며 쓴 풍자시로 알려져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어떠한가! 우리는 건강한 정신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며 사는가? 사회가 당면한 현실에 급급해 하는 동안 정말 중요한 정신의 문제는 늘 뒷전으로 밀리는 느낌이다.



방송매체들도 날마다 건강에 좋은 음식, 건강체조, 건강의학정보의 프로그램들을 쏟아 낸다. 시청자들도 큰 자각 없이 프로그램을 쫓아 가다보면 온통 육체건강의 심각성에 매몰된다. 어느 프로그램도 정신건강을 심도 있게 다루는 프로그램은 없다. 부부 혹은 아이의 문제를 다루는 솔루션(solution) 이 전부다. 그것마저도 짜임새가 아주 허술하다. 토크쇼도 흥미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깊이가 없고 수다만 떨다가 끝나버리는 형국이다. 언론이 개인의 삶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인기에 연연한 편협(偏狹)된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 생각 있는 작가. 의식 있는 PD가 국민의 의식을 전환할 책임을 가져야 할 것이다.



향기로운 사람! 그 사람 옆에는 반드시 향기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도량 넓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 향기로운 꽃은 향기를 맡는 사람에게 순간의 행복을 주지만 향기로운 사람은 수많은 사람의 삶을 변화시킨다. 그런데 향기로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많지만 스스로가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향기로운 삶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힘든 이유일 것이다. 향기로운 사람은 인간사의 희노애락(喜怒哀樂)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주어진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향기로운 사람은 스스로 살신성인(殺身成仁)하고도 그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다. 향기로운 사람은 지식, 물질, 정신을 모두 내어 주고도 더 내어놓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이다.



향기로운 사람은 가고 오는 것에 마음을 쓰지 않지만 그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내미는 손을 뿌리치지 않으며 거두어 가는 마음에 서운해 하지 않는 사람이다. 가벼운 지식을 조롱하지 않고 자신보다 나은 인품에 기꺼이 머리를 숙이는 사람이다. 향기로운 사람! 그 사람은 누구인가? 나의 눈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내 생각은 무엇을 바라는가? 내 마음은 어디에 머무는가? 향기로운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내’가 되기를 원해야 한다. 그렇게 노력하고 그 길을 쫓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향기로운 사람이 되는 길에 생을 걸어도 후회할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