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인천발-LA행 비행기에서 미국인 부모 품에서 찢어지게 울던 한국아이를 정성껏 돌봐주던 승무원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10시간이 넘는 비행 시간동안 아이의 땀을 닦아주고, 업어주고, 재워주는 등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한 네티즌은 자신의 트위터에 “아시아나 OZ 204 천사를 소개합니다”는 글귀와 함께 사진을 올렸다.
받으려 하지 말고 줘라
15개월이 된 아이가 ‘엄마’를 부르며 하염없이 울자,
여승무원 2명이 번갈아 가며 아이를 업고 재우는 등 따뜻하게 돌봐준 이 사연의 주인공들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다”며 실명 공개를 꺼렸고,
오히려 “아이가 시끄럽게 우는데도 입양사실을 눈치채고 양해해주신
승객들의 배려에 더욱 감사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두명의 승무원은 물론 결혼하고 아이를 가진 엄마들이었다. 그랬기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하지만 분명한건 단순한 승무원으로서 ‘의무감’으로는 자신의 시간과 잠을 포기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건 아마도 입양되가는 아이에 대한 ‘애틋함’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는 아이에 대해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반면 아이의 부모입장은 어떤가? 아이를 포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까지도 해외입양과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는 쓰러져가는 부정과 모정에 서글퍼진다. 필자가 아이 부모에 대한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떤 행동이든지 그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는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관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관심’에는 충분한 ‘표현’이 따라야만 한다.
‘무관심, 무뚝뚝, 무표현’은 없어져야 할 ‘3무(無)’ 다.

사람들이 감동을 하는 이유는 그 감동이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 때문이다.
우린 자신이 아니라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언젠가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꺼이 남을 도와줘야 한다.

나의 모자람과 지나침, 교만함과 우격다짐, 경솔함과 이기주의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만들지 않도록 하자.
미숙한 사람은 대접받기를 즐겨한다.
보통 사람은 적어도 대접받은 만큼은 남을 대접한다.
그리고 성숙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대접받지 못해도 남 대접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진실한 관심은 이해를, 이해는 신뢰를, 신뢰는 사랑을, 사랑은 봉사를, 봉사는 평화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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