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고통은 “양날의 칼”

“슬픔은 양날의 칼(Double-Edged Sword)이다. 어떻게 좋은 면으로 쓸 것인가?”라는 칼럼(CNN, 2020. 6. 5)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팔리지 않는 자동차를 만드는 대기업, 상영이 된다는 보장도 없는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 텅 빈 공연장 화장실에 앉아 있는 배우들뿐만 아니라, 강의가 없는 강사들이나 학생이 없는 대학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위기는 전염병의 감염 이외의 또 다른 질병에 시달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즉, “정신적 건강의 위기(Mental Health Crisis)”이다. 돈이 없이 슬프고, 친구를 만나지 못해 외롭고, 할 일이 없어 고통스러운 상황, 이를 어찌할 것인가?

냉정히 생각해 보건대, 과연 지금까지 살아온 풍요, 마음대로 쓰면서 낭비한 자원, 곳곳을 휘젓고 다니며 훼손한 자연 등은 정말 정상적인 인간의 삶(Normal Life)이었는지 생각해 본다. COVID-19가 끝나고(Post-COVID-19),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는 길이 그리 쉽지 않을 거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게 들린다. 마음의 준비와 태도의 변화가 필요할 때다.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버티고 견디는 능력(Endurance)”도 핵심역량(Core-Competency) 중의 하나이며,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능력을 “역경지수(Adversity Quotient)”라고 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이겨내고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는 것, 우리는 그것을 “회복력(Resilience)”라고 한다.

슬픔의 양면성, 고통의 “양날의 칼”은 무엇일까? 기쁘고 잘 나갈 때는 자칫 교만해지기 쉽고, 우쭐대거나 거만한 언행을 보일 수도 있지만, 슬픈 일이 있거나 고통스러울 때, 사람들은 반성을 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며, 겸손해진다. 1등을 했을 때, 2등을 한 사람이 우습게 보이다가도 입상에 들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설 때, 아무도 박수를 쳐주지 않을 때 사람은 반성하고 미안해 할 수 있다. 그제서야 자신을 돌아보며 이웃들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도 있다.

슬프고 어렵고 힘들 때마다 예술가들은 작품을 만들었다. 스티븐 킹은 세탁소에서 구더기를 떨면서 글을 썼고,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카뮈는 “페스트”를 썼으며, 흑사병을 앓고 난 후, 뭉크는 “절규”를 그렸다. 설령 우리 모두가 예술가는 아니지만, 지금처럼, 예측하지 못한 질병으로 세계인 모두가 힘들어 할 때, 각자의 특기를 살려, 시를 쓸 수도 있고, 수필가가 될 수도 있으며,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기쁠 때만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슬플 때 불러 보고 싶은 노래도 있고, 고통스러울 때 보고 싶은 친구도 있지 않은가?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전쟁과 질병, 자연재해와 시민 혁명 등을 골고루 겪을 수 있음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홍석기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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