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근영의 블록체인 알쓸신잡] '조커'와 서초동, 그리고 광화문
플레잉카드 게임에서 와일드 카드로 쓰이며 어떠한 카드 역할도 대신할 수 있는 가장 막강한 카드가 조커다. 스페이드, 클럽, 하트, 다이아몬드의 문양과 숫자 대신 광대가 그려져 있으며 한 세트에는 조커 2장이 들어가 있다.

카드 조커에 그려진 모델은 올림포스 열두 신 중 가장 막내이며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의 형상이다.

디오니소스는 로마 신화의 바쿠스와 동일시되며, 또한 풍요의 신 리베르 파테르(Liber Pater, ‘자유의 아버지’)와 동일시되기도 하였던 디오니소스는 ‘두 번 태어난 신’, ‘경계를 넘나드는 신’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 ‘문명화와 비문명화’, ‘남성과 여성’, ‘인간과 짐승’, ‘젊은이와 노인’, ‘이성과 광기’, ‘현실과 허구’ 등등 경계를 넘는 모습으로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 개봉 첫날 아침 일찍이 영화 ‘조커’를 보았다.

영화를 보면서 디오니소스가 지니고 있는 이성과 광기라는 이미지와 기가 막히게 일치하는 영화의 내용을 보면서 영화 제목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전작 배트맨 ‘다크나이트’에서 악당 ‘조커’ 역을 맡아 사후 남우 조연상을 받은 ‘히스 레저’의 강렬한 이미지를 뛰넘는 멋진 연기를 보인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조커’는 뛰어난 영상미와 몰입도, 높은 전개과정, 2시간의 러닝 타임을 가득히 채우는 안타까움과 긴장감, 그리고 강렬한 여운을 느끼게 하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개봉을 앞두고 지난 2012년 7월 20일, 콜로라도 오로라의 한 극장에서 <다크 나이트 라이즈> 상영 중에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끄집어내어 사고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는 중이다.

당시 사건의 범인인 24세의 제임스 홈즈가 당시 자신을 ‘조커’에 빗대어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총기 사고 후 <타임>, <뉴욕 포스트> 같은 현지 언론들은 이 영화에 책임감이 부족하다며 유죄를 선고했는데, 이에 감독 토드 필립스는 80년이 넘은 허구 속 인물 ‘조커’와 ‘존윅’이 왜 다른 기준으로 평가받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필자 역시 이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폭행과 괴롭힘, 무시를 당하는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의 처지에 대한 공감과 미치광이 범죄자로 변해가는 그의 여정에 안타까움을 느껴야만 했다.

80년 전에 만화로 태어난 배트맨의 조커가 오늘날 영화로 만들어져 인간의 본능 속에 숨어있는 광기 어린 폭력성을 끌어내고, 총기를 휘둘러 사람을 죽이고 ‘세상 모든 것이 코미디’라고 외치며 자신을 합리화하며 폭력의 행사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비겁함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미치광이 살인자를 추종하는 수많은 고담시민들의 환호로 끝나는 이 영화를 본 후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마무리한 감독에 대해 불편한 마음도 몰려왔다.

이 영화를 본 후 광화문과 서초동 집회 뉴스에 참여한 우리 국민들 수준이 그래도 조커 영화 속 고담시의 광대탈을 뒤집어쓴 폭도들보다는 훨씬 세련되고 안정된 모습이라 마음이 편해왔다.

하지만 극단적인 좌우 집단 세력의 싸움은 결국 어느 한쪽의 소외되고 불편한 마음을 불러일으켜 ‘조커’와 같은 불행한 결과로 이어질까 심하게 걱정이 된다.

영화 조커에서 주인공은 그토록 원하던 TV 프로에 출연한 자리에서 사회자인 ‘로버트 드니로’를 권총으로 쏘기 직전 ‘사람을 광대로 보고, 무시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키며 사회자를 사살하고 방송 중인 TV 화면을 흔들며 외쳐댄다.

약자이며 부족한 사람에게도 배려와 존경심을 보여 달라는 주인공의 외침은 깊게 이해가 되면서도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최근 좌, 우 집회 시위에 나타나는 양측 진영의 모습과 겹치면서,

좌우 진영 모두가 상대방에 대한 극단과 혐오의 감정으로 가득한 대결의 정치판으로 변질되어가는 모습이 투영되면서 아직도 좌우 이데롤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차 왔다.

항상 비극을 막고 조율과 타협을 이끌 수 있는 역할은, 가진 자와 승자의 몫이듯 현재 정치권의 분열과 공백은 결국 지도자의 몫이라고 본다.

생각이 다른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것이 나라의 지도자 능력이며 반드시 해야 할 역할이다.

우리나라 정치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몰렸다는 광화문 집회와 서초동 집회를 보면서 정치에도 ‘조커’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갔다.

누구나 조커를 잡으면 여당이던 야당이던 잘못된 정치가를 퇴출시키거나 권한을 정지시키거나 쫒겨 내거나 무엇이던 선택할 수 있는 막강한 조커 카드는 어디 없을까?

앞에서 말했다시피 플레잉카드 게임에서 ‘조커’는 어느 카드던 카드 홀더가 원하는 역할로 변신할 수 있는 막강한 카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에서 본인의 결정 권한과 지위를 놓고 볼 때 우리 정치판의 ‘조커’는 대통령밖에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현명하신 대통령께서는 ‘조커’로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이제는 지긋지긋한 좌우대립에 의한 저질 정치 문화와 국민 분열의 장을 종식시키고 하나로 뭉쳐진 국민 통합을 이룩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려 본다.



신근영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