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수칼럼] "무슨 일 하세요?"
“지수 씨는 무슨 일을 하세요?”

“네, 저는 강사입니다.”

“어쩐지 말을 정말 잘 하시네요!”

아들이 고등학생 때 학부모 독서모임에 나간 적이 있다. 당시 이사를 왔고 아들은 전학 와서 학교가 낯선 상태였다. 필자가 학부모들을 사귀려고 나가게 되었다. 독서모임은 유일한 엄마들 동아리였다. 주로 도서를 읽고 각자 소감을 나누는 형식이었다.

“무슨 일을 하세요?”  처음 만난 사람들이 많이 주고받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두고 요즘은 ‘상대방에 대한 실례’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대방을 파악하는데 가장 빠르고 쉽기 때문에 주로 쓰인다. 필자는 이 질문을 하는 쪽 보다 받는 쪽이 더 많다. 그때마다 필자는 자랑스럽게 “강사입니다!” 답한다.

2년 전 유럽 패키지여행 했을 때 일이다. 필자 부부는 40대 부부와 한 조가 되었다.

“실례지만 무슨 일하세요? 저는 강사입니다.”

“저는 인천에서 배추장사를 하구먼유.”

유럽 여행지는 기독교 성지가 많다. 자연스럽게 종교이야기가 나왔는데 배추장사 부부도 우리와 같이 기독교였다. “한국 사람은 밥 한번 먹어야 가까워진다!”는데 종일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움직이는데다 종교까지 같아서 급속히 친해졌다. 먼 타국 여행지에서 보이는 건 성지였고 당연히 종교에 관한 대화꺼리가 많았다. 하루는 이 부부가 조식 장소에 늦게 나왔다.

“늦게 와서 제대로 못 드시겠어요!”

“아침예배 드리고 오느라 늦었어요.”

“예배드렸구나. 근데, 여행 와서 예배는 과하다 과해. 간단히 기도만 해요!”  그때 배추장사가 말했다.

“새벽기도도 매일 같이 다녀유. 결혼할 때 약속했시유!”

“아, 정말요? 그래도 여행인데 간단히 기도만해요.”

체코에서 1박한 다음날 아침 일이다. 배추장사가 삼십분이나 지각했다. 가이드가 배추장사에게 지각한 벌칙으로 일행에게 체코 맥주를 사게 했다. 그날 점심때 배추장사는 벌칙 맥주를 샀고 우리도 얼떨결에 얻어 마셨다. 그런데 배추장사가 자기 것은 주문하지 않았다.

“왜, 안 마셔요. 돈만내고.”

“저는 술 안마셔유. 집사람도 결혼할 때 술 안마시기로 약속했시유!”

결혼할 때 약속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다들 결혼하고 나면 언제 그런 약속이 있었냐는 듯 사는 게 태반이다. 그런데 아직도 말끝마다 “결혼 전에 약속 했시유!”한다. 배추장사는 순수하다 못해 사회생활하기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보면 볼수록 요즘사람(?) 같지 않은 매력이 참 좋았다.

“혹시 일산 근처로 이사하면 우리교회로 와요!”

“우리교회가 어려워서 제가 지난 달 월세를 냈고, 여러모로 옮기기 쉽지 않아요.”

“어머나, 교회 월세까지. 대단하세요!”

“상황이 되면 하는 거쥬.”

이야기를 나눌수록 놀랐다. 필자에게 없는 마인드가 그들에게 있었다. 덕분에 직업정신이 발휘되었을까. 더 알고 싶고 배우고 싶었다. 관광지 보다 이 사람들이 더 궁금해졌다.

“목사님한테 잘 해야 되요. 요즘, 목사님들이 힘들잖아요.”

“힘들쥬. 근데 내일 부목사님이 공항에 마중 나오신대유.”

“세상에나! 목사님이 직접 모시러 나오세요?”  필자는 연신 물개박수를 치며 놀랐다.

“한번은 목사님이 실수를 해서 나가냐 마냐 했시유. 제가 나서서 말렸시유.”

“그럼요! 실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어느덧 패키지여행 마지막 날이 되었다. 패키지 팀은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나기로 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 조는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 카페에서 마지막 커피를 나누었다.

“집사님, 저 배추장사 아니어유!”

“네?”

“사실은 저 인천 00교회 담임목사여유.”

“아니, 아니 이럴 수가!”

배추장사 아니 목사는 필자 손을 잡고 거듭 미안해했다. 부인이 사실대로 말하라고 했지만 배추장사는 ‘내가 목사입니다!’ 말한 순간부터 필자부부가 불편할 것이란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또, 여행지에서 목사임을 밝힌 적이 없다고 했다. 이번 여행에도 일부러 숨겼지만 나중에는 필자부부와 함께한 시간이 좋아서 이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 순간 필자 머릿속에 많은 말들이 지나갔다.  집사가 목사에게 한 말들이다.

 “교회는 잘 나가냐!, 목사에게 잘 해라!, 돈만 내고 왜 맥주를 안마시냐!, 우리 교회로 와라!, 여행 와서 예배는 드리지 말고 간단히 기도로 끝내라!”

다시 필자 이야기다. 필자는 사람 인연을 매우 소중히 여기다보니 맺은 관계를 끊는 경우가 없다. 독서모임에서 만난 엄마들을 안지도 8년째다. 아이들이 오래전 졸업했어도 지금도 자주 모인다. 어느 날 필자에게 한 엄마가 급(?) 고백을 했다.  이 말을 듣고 필자는 충격을 받았고 다시는 직업란에 <강사>를 쓰지 않았다.

“지수씨! 이건 말하고 용서를 구해야할 것 같아!”

“네? 용서라니요?”

“우리 처음 만난 날, 지수씨가 강사라서 너무 말을 잘해 재밌었다고 남편에게 말을 했더니. 말 잘하는 강사는 사기꾼이라고. 조심하라고 했어! 오랫동안 지수씨랑 지내보니 정말 좋은 사람인데. 내가 오해해서 진심 미안해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흉악한 강도 프로크루테스의 침대가 있다. 프로크루테스는 길에 숨어 있다가 행인들을 습격해서 자기 집으로 끌고 온다. 그리곤 침대에 묶는다. 끌려온 사람이 키가 큰 사람이면 침대에 맞지 않는 다리와 발목을 잘라버렸고, 키가 작은 사람이면 그가 고통스럽게 죽을 때까지 침대에 맞춰 몸을 늘이는 악행을 저질렀다. 프로크루테스의 침대가 그렇듯이 우리는 평균적인 직업관 즉 <무슨 일을 하세요?>라고 묻고 ‘이 사람을 사귈까, 말까’에 대한 중심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는 않는가.

배추장사와 목사가 그렇다. 배추장사라고 해서 가볍게 생각하거나 무시한 적 없다. 하지만 마음 편히 대한 것은 사실이다. 그 목사 말처럼 목사라고 밝혔다면 교회 다니는 집사가 마음 놓고 편하게, 함부로(?)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직업이 주는 ‘평균적인 이미지’가 이렇게 차이가 있다.

필자 역시 강사란 직업이 사기꾼(?)이 되는 것을 경험했다. 그것도 필자를 몇 년씩이나 사기꾼으로 생각하고 늘 조심하면서 만났다는 말은 가히 충격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1분이 걸리고 그 사람과 사귀는 데는 한 시간이 걸리고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 사람을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 고 한다. 필자는 이 말을 믿는다.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좋은 사람’으로 남는 것만큼 소중한 투자는 없는 것 같다.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무슨 일을 하는 것’보다 ‘내가 무엇을 남길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훗날 지금의 인연들과 헤어지더라도 우리가 남긴 흔적은 영혼 깊이 남겨 있을지 모를 일이다.

“혹시 무슨 일 하세요?”

지금 누군가 우연히 던진 한 마디가 인연을 넘어 필연이 되었으면 한다.
Ⓒ이지수20190211(jslee308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