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20년을 거친 일본사회의 고민은 일손 부족이다.

집 근처 역 구내상가를 지나면 모든 곳에 구인광고 전단지가 붙어있다. 이러다 보니 공사현장의 교통정리나 경비는 보통 70세 이상 할아버지 할머니가 대부분이다.

특히 요식업 관련은 더욱 일손이 부족해 도쿄 신오쿠보(코리아타운)를 가도 네팔 종업원과 중국 교포들이 대부분이다.

내 경우 창업을 위해 벤치마킹 타깃을 정해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을 배웠다. 한국 식당들은 나이가 많아 기피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일본 가게는 “제발 와서 일 좀 해주세요”다.

1. 오리진벤또 : 이온(AEON)그룹에서 운영하는 도시락 체인점이다. 한국으로 치면 이마트에서 운영하는 한 블록 건너마다 있는 도시락 집으로 생각하면 되는데 이곳에선 점포운영에 관한 시스템을 배울 수 있었다.

점장과 인터뷰를 끝낸 후 계약서를 쓰면 아이패드 동영상을 보며 혼자 교육을 받는다. 출근하면 손부터 씻고 알코올로 소독 후 앞치마 끈 묶는 방법부터 냉장고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매뉴얼화 돼 있다.

혹시 실수라도 하게 되면 매뉴얼을 안 지키고 교육을 소홀히 받은 것이 된다.

한번은 손님이 없어 짝 다리를 짚고 서있었더니 젊은 친구 한 명이 손바닥으로 등을 내리치며 “김상! 짝 다리 안돼”라고 소리친다. 이 친구 퇴근할 때 보니 까만 교복에 모자를 깊이 눌러쓴 고등학생이었다.

일본은 나이에 대한 서열이 없어 장단점이 있다. 자식보다 어린 고등학생에게 한대 맞았지만 반대로 나이에 대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고깃집의 흐름을 배워보려고 신오쿠보(코리아타운)의 잘나가는 식당 주방장과 면접을 봤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국 청년이었는데 “아저씨 내가 창고 가서 고기 들고 오라 하면 하실 거에요?” “물론이죠” 주방장 왈 “전 그렇게 못합니다. 딴 데 알아보세요.”

역시 한국인들 사이에서 나이차에 의한 서열관계를 극복한다는 게 쉽지 않다.

벤또집을 찾는 손님들 얼굴엔 웃음이 별로 없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고 일이 끝난 후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한번은 쓰레기를 버리러 가다 봉투로 손님을 살짝 건드린 모양이다. 40대 초반의 아주머니가 따라 나와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지른다.

관광 와서 만났던 일본인이 아닌 현실의 일본인 모습이다.

매장 메뉴가운데 비빔밥과 김치우동이 있었는데 매출을 보면 일본인들의 한식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얼마 전 도시락을 사러 들른 오리진벤또에서 점장이 반갑게 맞으며 한마디 한다. “다시 와서 일해주면 안돼? 도와줘~~~!”
도쿄 "제발 와서 일 좀 해주세요"
2.  다카나시유업 : 지난 주말 다카나시 동료들이 가게를 전세 내서 송별회를 했다. 내 파트너였던 동료의 전근 환송회다. 2년 만에 만난 소장의 한마디. “김상 낮에 우리회사 와서 일좀 해주세요. ㅜ.ㅜ” 소장 역시 사람을 못 구해 죽을 맛인 것 같다.

다카나시유업은 홋카이도에 농장이 있고 가나가와현에 본사를 둔 50년 된 우유회사다. 매출은 메이저에 비해 아주 작은 1조원 정도다. 내가 근무한 곳은 도쿄영업소로 담당지역은 긴자-히비야였다. B2B전문 유통으로 트럭에 우유, 생크림,치즈 등을 가득 싣고 향하는 첫 거래처는 긴자 시세이도. 화장품으로 유명하지만 케익과 레스토랑도 인기 있다. 아침7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 주방에는 하얀 유니폼을 입원 스탭들이 긴장된 얼굴로 하루를 준비하고 나는 그들의 냉장고를 열고 제품을 넣어준다. 기존에 있던 제품을 모두 꺼내 오늘 배달 분을 가장 안쪽에 넣어주는 것은 기본. 이 밖에도 긴자의 미슐랭 별을 받은 레스토랑의 주방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즐거웠다. 규칙도 엄격하고 주방은 항상 깨끗했다.

비 오는 날이면 우비를 입고 뛰어다녀 땀과 비가 범벅이 되어 군대 훈련소 시절이 떠올랐다. 내 파트너는 30대의 젊은 친구였는데 매우 신사적이고 인사성도 밝았다. 둘이 함께 납품하면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은 항상 내 차지였다. 성품과 일은 확실히 구별하는 친구였다.

우리가 취급하는 제품은 200여가지가 넘었다. 일본의 빵이 왜 맛있는지 알 수 있게 됐다.

이때부터 우유는 4.0 이상을 먹게 됐고 생크림 종류만 20가지가 넘었다. 영업 비밀이지만 아직도 긴자를 가면 어떤 가게가 3.4를 쓰고 어떤 가게가 4.0을 썼는지 프리미엄 생크림을 썼던 가게를 찾게 된다. 물론 가격이 말해주지만.

퇴근시간이면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제발 가져가라고 부탁한다. 주말이면 생크림을 만들어 케익을 만들고 치즈는 질리도록 먹었던 기억이 난다.
도쿄 "제발 와서 일 좀 해주세요"
3. 에비스바 : 삿포로맥주에서 운영하는 에비스맥주 전문점이다. 주방에서 일을 배웠는데 모든 재료는 센트럴키친에서 받아 여기서는 코디와 오븐을 이용해 데우는 정도가 전부다.

외식산업은 시스템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배웠다. 특히 간단하면서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안주가 많았고 계절 메뉴가 계속 바뀌는 바람에 쉴틈없이 외웠던 기억뿐이다.

일본기업은 사람을 여유 있게 쓴다. 꼭 필요한 인원을 쓰는 한국가게에 비교가 되고 정확한 출퇴근과 근무시간에 휴대전화를 꺼낸다는 건 상상을 할 수 없다.

4. 한국음식점 : 마지막으로 한식을 배우기 위해 닭한마리 집과 푸드코트점에서 일을 했다. 일본에서 한식집의 이름이나 종류는 의미가 없다. 어디를 가도 메뉴가 똑같기 때문이다. 다만 “닭한마리집”에선 매일 닭 발을 다듬는 게 고역이었다. 이후 닭발 안주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한국 식당의 장점은 역시 언어소통이 자유롭다는 것과 근무에 융통성이 있다. 급한 일이 있으면 점장에게 얘기해 양해를 구한다거나 동료들끼리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단점은 시스템이 없다는 것과 손님이 없으면 예정 근무보다 일찍 퇴근시키고 손님이 많으면 더 도와줘야 하는 “정” 감 있는 스타일. 주방장이 중국 교포와 한국 이모가 있었는데 두 사람 스타일이 달라 담당에 따라 레시피나 시스템을 달리 해야 했다.



라면이든 초밥이든 목적한 것이 있을 때 학원을 다니는 방법도 있지만 시급을 받아가며 바닥부터 순차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일본 외식 시스템이다. 일본 기업은 시스템적으론 뛰어났지만 답답할 때도 있고 역시 “이방인”이라 혼자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나처럼 나이 든 사람이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젊은 사람 중심의 프랜차이즈는 보다는 동네 작은 개인 가게가 인간미가 있다. 이런 곳은 리쿠르트 사이트 보다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헬로워크”같은 곳을 통해 일자리를 찾는 편이 낫다.
도쿄 "제발 와서 일 좀 해주세요"
혹시 일본어가 서툴러 걱정되면 일단 한국가게에서 일을 시작해 언어가 늘면 일본가게에서 일을 추가하는 더블워크를 권장하고 싶다. 이곳은 “쓰리워크” “포워크”까지 다양한 패턴이 있다. 장점은 다양한 일들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고 내달 시프트(일정)를 한달 전에 제출하기 때문에 한달 정도 쉬어도 큰 문제가 없다(한국 가게는 잘릴 듯)내가 아는 일본 친구는 한 달간 유럽여행을 떠나고 여행 중에 다음달 시프트를 제출에 연속적으로 근무가 가능하도록 자기 일정을 관리한다.

사회보험이나 시스템이 잘 돼있어 정규직을 고집하는 한국에 비해 “프리타”로 자유롭게 사는 부류의 사람들도 많다.



RJ통신/Kimjeonguk.k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