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술자리는 좋은 술 때문일까? 아니면 좋은 사람 때문일까?



좋은 집은 집이 좋아서일까? 아니면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일까?







집이 아무리 커도 혼자만 있으면 외롭고



집을 아무리 잘 가꾸어 놓았어도 화목하지 않으면 편하지 않다.



술이란 마시면 사라지지만 사람은 계속 남아있게 된다.



술자리엔 좋은 사람과 즐거운 이야기거리가 있어야 하듯이



사람이 주인이지 술이 주인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건 사람이다.



인간(人間)이란 결국 사이의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존재다.







살기 위해 겨우 겨우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겨우 겨우 살아가도 누구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누구와 함께 있어도 소중한 사람은 커녕 투명인간처럼 느껴지거나



아예 거추장스러운 사람도 있다.



모든게 다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하지만 결국 서로의 문제다.



한 사람이 원인을 제공해도 그것을 참고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별것 아닌 것처럼 넘어가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진짜로 별것 아닌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별것 아닌 것도 그 전과 비교하면서 곱씹어 보면 별것아닌게 아니라 큰 일이 되고 만다. 만남과 헤어짐은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으로 결정된다.



사소한것도 못넘기는 ‘이해의 폭’이 좁아진 관계와



아무리 큰 문제도 쉽게 넘길 수 있는 ‘이해의 폭’이 넓어진 관계는 결과가 다르다.







‘이해의 폭’은 모든 사람에게 다 똑같은게 아니다.



강의 폭이 넓은데도 있고 좁은데도 있듯이 사람들 마다의 폭이 다르다.







‘이해의 폭’은 모르는 사람일 수록 좁고, 친한 사람일 수록 넓을 수도 있지만



‘이해의 폭’은 모르는 사람일 수록 넓고, 친한 사람일 수록 좁아질 수도 있다.



‘이해의 폭’은 상대에 대해 ‘안다’, ‘모른다’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해의 폭’은 상대방이 공격할 수록, 상대방이 무시할 수록, 상대방이 쏘아 댈 수록, 상대방이 따지고 덤빌 수록, 상대방이 냉냉하게 쳐다볼 수록 좁아진다.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억지로 자신을 위축시키고, 참아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간혹 필요한 경우도 있다. 더 중요한건 기계에 기름칠을 하면 매끈하게 돌아가듯이 매끈한 말 한마디가 상대와 맞물린 관계를 잘 돌리고, ‘이해의 폭’도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