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조그만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노인이 있었다. 그곳에는 우거진 야자수와 맑은 샘물이 있어서 지나가는 나그네들의 좋은 쉼터가 되었다. 노인은 야자수 그늘에서 목마른 나그네들에게 시원한 샘물을 떠 주는 것으로 기쁨과 보람을 느꼈는데 언젠가 부터 나그네들이 물을 마시고 나서 몇 푼의 동전을 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극구 사양을 했지만, 동전이 쌓여가면서 욕심이 생겨 나중에는 동전을 안 주는 사람들에게는 당당하게 동전을 요구하게 되었다. 노인은 물을 더 많이 나오게 해 더 많은 사람에게 제공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샘터를 최신 시설로 바꾸었다. 그러자 어찌 된 일인지 샘물이 점점 줄어 들기 시작했다. 노인은 곰곰히 고민하다가 주변의 야자수가 샘물을 빨아들인다고 생각했다. 노인은 샘물 주변의 야자수를 모두 베어버렸다. 얼마 후에 야자수 그늘도 없어졌고 샘물은 말라 버렸다.



살아가다 보면 주어져서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더 많은 걸 바라고 있는 자신과 만나게 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는 욕심은 그 보를 점점 키워나간다. 나이와 키는 그리 많아지지 않았는데 필요로 하는 것들은 수천 배, 수만 배로 늘어난다. 욕심 보는 키우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자라나는 자생형 시스템을 갖고 있나보다. 그래서 인지 욕심 보를 줄여 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작은 어항 속에 금붕어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 둘은 서로를 너무 미워하여 툭하면 싸웠는데 어느 날 그들은 크게 싸움을 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한 금붕어가 크게 다치게 되었고, 결국 그 금붕어는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살아남은 다른 금붕어는 이제 혼자서 편안히 살 수 있을 것이라며 마음껏 어항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며칠 뒤 그 금붕어도 죽고 말았다. 죽은 금붕어의 몸이 썩기 시작하면서 물 역시 악취를 풍기며 썩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같이 일할 수 있는 품성을 갖추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

– 토머스 누난, 전 IBM 부사장 및 ISS(Internet Security System) 설립자 –



무언가 존재한다는 것에는 함께 있어서 생기는 공존과 공생의 의미가 숨어져 있다. 자기 것만을 챙기려는 혼자만의 욕심은 늘 화를 부른다. 늘 타인과 더불어 조금씩 양보하는 미덕을 갖춰야 한다. 양보는 상대에게 이익을 줌으로써 당신도 그에 준하는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결국 양보마저도 당신을 위한 수단 중 하나다.



악한 욕심을 품게 되면 나쁜 결과를 얻게 됨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욕심을 버리라는 말은 아니다. 욕심을 가져야 열정이 생기고, 욕심을 부려야 원하는 일을 성취하게 만든다. 욕심은 꿈을 이루는 에너지도 되기 때문이다. 더 이루고 싶다는 것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말이다. 하지만 배가 찼는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더 먹는다면 배가 아프기 마련이다. 오히려 약을 먹어야 한다. 모든 것엔 조절이 필요하다. 자동차의 힘은 마티즈나 에쿠스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자신을 알고 자신이 가진 기운의 크기를 이해해야만 바라는 바를 조절할 수 있다.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면 브레이크가 망가진 자동차처럼 직진만 하다가 사고를 치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해서는 늘 감사할 줄 아는 긍정적 태도가 필요하다. “행복은 언제나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가 행복해지고 싶다면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욕심을 조절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욕심은 장점과 단점을 다 갖고 있다. 단지 무엇을 욕심 내는가에 따라 달라지고, 무엇을 품는가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바로 악한 욕심을 품은 자는 악인(惡人)이 되고, 선한 욕심을 품은 자는 선인(善人)이 된다는 의미다. 중요한 건 뭐든지 지나치면 독(毒)이 된다는 것이다. 욕심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 몸을 망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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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
kwithu@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