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3월과 6월, 세계 최대라는 타이틀을 단 시계박람회 바젤월드(Basel World)와 아트 바젤(Art Basel)이 스위스의 수도 취리히가 아닌 바젤에서 열린다. 인구 약 17만명의 인구수로만 따진다면 한국의 경상북도 안동시와 비슷한 규모를 가진 도시이다. 세계 최대이자 최고의 품격을 자랑하는 행사를 직접 만나고 싶은 마음에 찾았던 바젤의 6월. 담백하면서 깊이가 있는 이 도시의 공기를 들이키게 되었다.

스위스 제2의 도시, 바젤

세계 최대, 세계 최고의 타이틀을 가진 전시를 개최하다.

스위스 제 2의 도시, 바젤에서는 롤렉스, 오메가와 시계 브랜드 이외에도 에르메스, 샤넬과 같은 브랜드를 만날 수 있는 행사가 있다. 약 2만명의 근로자가 6주 동안 설치며, 참가하는 회사만 약 1천 400개. 충청남도 논산시 인구정도가 되는 12만명 이상의 방문자와 전세계 3,600명의 저널리스트들이 매해 3월이면 바젤을 방문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시계 박람회 바젤월드(Basel World)이다. 전시가 진행되는 일주일동안에만 도시 인구의 70%가 이 곳을 찾는 셈이다. 1972년 스위스 산업박람회 안에서 열린 ‘유럽 시계 주얼리 쇼’에서 시작된 박람회로 업계 종사자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입장권만 구입하면 참가할 수 있다. 산언박람회는 수많은 도시에서 열리고 있지만, 몇 천만원, 때때로 몇 억원에 달하는 시계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세계 유일무이한 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아트바젤 행사장 전경 @photographed by Hani Oh


바젤월드와 함께 세계 최대,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는 행사는 바로 아트바젤(Art Basel)이다. 규모와 퀄리티와 함께 권위까지 국제 예술 박람회이다. 매년 6월에 4일간 개최되는 이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전세계의 갤러리들을 사전 지원을 한다. 아트바젤에 의해 선택된 300개의 갤러리는 세계 최고의 그리고 가장 주목할 만한 갤러리로 인정받는 셈이다. 1970년 바젤의 갤러리스트인 에른스트 바이엘러(Ernst Beyeler), 트루디 브루크너(Trudi Bruckner), 발츠 힐트(Balz Hilt)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해 첫 바젤에서 10개국 90개 갤러리에서 출품한 작품들을 1만6천명의 관람객이 보았다. 2014년에는 약 9만2천명이 관람했다.

품위있는 그들, 슈퍼리치들이 찾는 도시

아트바젤 관람객의 숫자와 함께 관람객의 수준 또한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전세계 최정상의 갤러리스트들, 규레이터들을 비롯하여 콜렉터들이 참가한다. 제트비행기를 자가용으로 이용하는 명망있는 집안, 신흥 자산가들이 찾는 행사로 예술작품의 거래는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일반 관람객들에게는 관람을, 컬렉터들에게는 거대한 예술품 쇼핑공간이 된다. 쉽사리 상표가 드러나지 않는 악어가방, 타조가방을 비롯한 투명성, 컬러가 남다른 다이아몬드를 입은 사람들은 물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같은 셀럽들이 직접 작품을 사기 위해 온다. 2015년 아트바젤에서는 3.4억 달러(한화 약 3.7조원)의 예술작품이 거래되었다. 4일간의 행사기간동안 거래된 금액이 카카오 연매출의 약 2배에 해당된다. 예술계 종사자만이 아닌 금융 투자자들도 아트바젤을 방문한다. 단순히 예술가에 대한 견문을 넓히는 것을 넘어서 세계적인 명문가, 슈퍼리치들의 투자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전통적인 화풍의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이 많이 팔리면 안정적인 투자처를, 혁신적이고 새로운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사랑받으면 고위험 투자에도 자본가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세계적인 돈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트바젤이 이루어지는 동안 바젤은 전세계 품위있는 그들의 사랑방이 된다.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돈을 쓰기 위해 (그들 입장에서는 수집 또는 투자) 모이는 것이다. 이들 VIP들을 위한 아트바젤 프리뷰 기간동안 도시 곳곳의 레스토랑과 맥주집들은 다양한 파티들로 북적거리며, 그 파티 개최비용이나 그 안에서 오고가는 정보들의 가치는 가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아트바젤, 마이애미, 홍콩으로 확장되어 바젤을 알리다.

2015년 아트바젤은 미국의 마이애미, 중국의 홍콩으로 확장되어 개최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예술 애호가들은 6월 아트바젤이외에도 3월 아트바젤 홍콩, 12월 아트바젤 마이애미를 통해 1년 내내 예술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도시의 이름, 바젤에서 열리는 예술 행사 아트바젤은 이제 전세계 최대이자 최고의 예술 행사의 고유명사화가 된 셈이다. 독일의 카셀 도큐멘타, 이태리의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의 광주 비엔날레처럼 도시의 이름이 행사의 이름이 되는 경우는 많지만, 그 도시의 행사 이름이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어 다른 도시에서 열리는 행사에도 사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자연스럽게 바젤이란 도시의 이름이 반복되면서 인지도와 친근도는 올라가게 된다. 덕분에 처음 아트바젤 홍콩, 아트바젤 마이애미를 접한 사람들은 아트바젤이라는 행사의 시작이 바젤이란 도시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더욱 큰 흥미를 느끼게 되며, 그 도시에 가보고 싶어 한다. 마치 우리가 맛집 분점을 들렀다가 그 맛집의 원조를 찾아가 먹는 것처럼 말이다.

바젤 시내 전경 @photographed by Hani Oh


팅글리 분수(Tinguely Fountain, 1977) @photographed by Hani Oh


도시를 대표하는 예술, 건축, 시민

그리고 노블리스 오블리제

도시를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있다는 것은 관광객들에게는 매력적인 요소이다. 현대미술에서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앤디 워홀, 잭슨 폴락의 뉴욕, 피카소, 반 고흐, 모딜리아니, 샤갈의 파리. 그리고 바젤에는 기계를 사용하여 반(反)기계를 표현해내는 키네틱 아티스트인 장 팅글 리가 있다. 한 낮, 바젤의 햇살과 물을 뿜어내면서 마치 바젤과 대화를 하는 듯한 팅글리 분수(Tinguely Fountain, 1977)가 그의 작품이다. 또한 그의 뮤지엄에서 그가 남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예술뿐이 아니라 건축 역시 유명하다. 바젤 출신으로 베이징 국립 경기장을 지었으며,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프리츠커(Pritzker)상을 수상한 헤르조그(Herzog)와 드 뫼롱(de Meuron)의 건축사무실이 있다. 헤르조그&드 뫼롱이 디자인한 샤울라거 미술관(Schaulager),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가 디자인한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Vitra Design Museum), 렌조 피아노(Renzo Piano)가 디자인한 바이엘러 뮤지엄(FondationBeyeler Museum)은 바젤에서 가까이 자리하고 있어 바젤을 방문한 이들의 건축투어 코스로도 인기있다.

바젤시의 광장 @photographed by Hani Oh


세계적인 예술, 시계행사, 도시 곳곳에 자리한 예술과 건축.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바젤이 아름답고 특별한 이유는 바로 시민들에 있다. 바젤 관광청의 크리스틴 웰티(Christine Waelti)와 루돌프 슈터(Rudolf Suter)의 도움으로 바젤이라는 도시를 더욱 깊게 배울 수 있었다. 섬유염색산업을 바탕으로 성장한 바젤은 제약업이 발달했다. 500여개의 제약회사와 의학 기술회사가 자리하고 있다. 해당 산업을 통해 자본을 축적한 바젤의 자산가들은 그들의 재정적인 축복을 도시에 환원하기로 했다. 그것도 진정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말이다. 도시의 건물들 중 시민들을 위한 극장등이 있는 건물들은 지역 자산가들이 바젤시에 기부한 것이라고 한다. 어느 집안이 기부했는지는 관광청 담당자도 알 수 없다고 한다. 기부자는 알 수 없지만, 자산가들의 기부로 인해 도시의 문화와 예술이 더욱 풍성해진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1967년, 한 항공사가 파산위기로 인하여 바젤미술관(Basel Kunstmuseum)에 걸려져 있던 피카소의 그림 두 점을 판매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바젤시와 시민들이 모금을 통해 피카소의 작품을 구매하여 바젤시는 그의 작품을 지킬 수 있었다. 물론 반대하는 시민들도 많았고, 논의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그 와중에 큰 도움을 준 것은 바로 바젤시의 자산가들이다.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그 모금에도 바젤의 자산가들의 힘이 있었다. 그들이 그 거대한 비용의 많은 부분을 기부했다. 그러나 역시 많은 시민들의 기부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민주적인 토론방식은 바젤이라는 도시를 근방의 독일은 물론 미국에까지 알리는데에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파블로 피카소에게 들어갔으며, 그는 그의 작품 2점, 그리고 나중에 알려지기로 몇 작품을 더 바젤 미술관에 선물로 주었다. 심지어 그는 그 유명한 ‘아비뇽의 여인들(Les Demoiselles d’Avignon)‘의 스케치를 선물로 주기까지했다. 당시 86살이었던 피카소가 그의 작품을 도시에 남기고 싶어하던 많은 시민들의 성원에 얼마나 감격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바젤의 젊은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선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않아 아트바젤이 시작되었을 때 많은 예술가들, 저널리스트들이 바젤로 찾아오고 싶어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집 앞에 놓인 테이블 위의 과일들 @photographed by Hani Oh


바젤은 프랑스, 독일과 국경을 맞닿은 도시이다. 덕분에 바젤 공항에 내렸을 때는 주의해야한다. 프랑스로, 독일로 나가는 출구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대부분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이 곳을 걷다보니 문 열린 집 앞, 지키는 사람 하나 없는 탁자 위에 놓인 과일과 채소를 만날 수 있다. 루돌프는 말한다.

“근처 농장에서 수확한 것들이 너무 많은 경우, 때로는 친척들에게 받아서 나눠주고도 남은 경우에 이렇게 탁자 위에 올려놓는답니다.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서 먹으라고요. 적힌 금액을 놓고, 원하는 과일을 가져오면 된답니다. 지켜보는 사람은 없지만, 자기 자신을 속이는 행동을 할 수는 없잖아요.”

그 말을 들으면서 이 도시의 예술이 꽃피우는 것도, 자산가들이 너그럽게 도시를 사랑하는 것도 바로 이런 작은 부분에서도 나누려는 시민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싶었다. 물론, 루돌프가 거리에 버려진 캔 5개를 보고 바젤도 옛날과 다르게 공중도덕의식이 사라지고, 지저분해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내가 사는 도시와는 비교도 안 되게 깨끗하고 쾌적한 바젤을 걸으면서 나는 도시를 완성하는 가장 매력적인 요소인 사람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바젤 뮤지엄에 있는 오귀스트 로댕의 ‘칼레의 시민(Die Bürger von Calais)’이 잘 어울리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도시에서도 그 지역의 자산가들이 빌딩을 시(市)의 시민들을 위해 기부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를 기대해보면서 말이다.

*답사에 도움을 주신 바젤 관광청의 크리스틴 웰티(Christine Waelti)와 루돌프 슈터(Rudolf Suter)에게 큰 감사를 드립니다. Special thanks for Christine Waelti and Rudolf Suter at Basel Tourismus for helping me to experience your city.

오하니(Hani Oh)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향수 프로듀서
현) 한국법제정책연구회 도시정책컨설팅센터장
현) 한국향문화연구소 대표
현) 뷰티, 패션, F&B, 도시 등 다수의 브랜딩 및 컨설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전) 인큐 브랜드 이사
< 여우야, 뉴욕가자> 저자
뉴욕 패션스쿨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패션 머천다이징 매니지먼트 전공
뉴욕 F.I.T. 이미지 컨설팅 수료
프랑스 파리 퍼퓨머리 향수 제작 워크샵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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