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줍 슝, 히줍 슝, 이 자리에 없나요.? 히줍 슝,

한국에서 온 히줍 슝”



한국이라는 말에 비로소 ‘히줍 슝’이라는 소리가

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 여기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히줍 슝’이 아니고

‘희섭 정’입니다 .”



얼굴이 약간 붉어진 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신청한 ‘근대 이스라엘 역사’ 과목 첫 시간에

벌어진 작은 에피소드이다. 담당 교수인 Abraham Diskin

교수가 출석을 부르고 있었던 순간이기도 하다.

Chung을 ‘정’으로 발음하는 게 아닌 ‘슝’으로

발음한다는 것이 내 관점에서는 참 어색하게 들렸지만

재미있기도 했다.



“ 미안하네, 미스터 슝, 하하하, 아니, 미스터 정 ”



교수님의 익살스런 사과가 이어지고

교실 전체가 내 이름 때문에 웃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동양인이라고는 나 밖에 없는 교실에서 형형색색의

눈빛이 나에게 쏠린다.이 천년 동안 전세계에 퍼져 살던

유태인들의 인종적 다양성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백발이 성성한 유태인 노교수는 나에게 윙크를 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다음 학생의 이름을 불러 나갔다.



“ 드류 팩터, 벤자민 자모시, 시드니 그룬버그 ….”



강의 시간이 끝나고 학생들이 다 나간 후,

Diskin 교수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난 독일 태생이네, 미스터 정, 당신 이름을 독일식

Yiddish 발음으로 부르다 보니 그만 ‘슝’이 되었네,

다시 한 번 미안하네”

(Yiddish는 독일어를 기본으로하고 슬라브어와 히브리어가

가미된 유럽에 사는 유태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다.)



한 주가 지나고 두 번째 강의 시간이 되었고 본격적인

강의가 진행되었다.



“ 유태인들은 어디를 가나 박해를 받았고 게토라는

유태인 거주 지역에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 게토라는

작은 거주 지역에서도 남녀간의 사랑은 계속되었고

아이들이 태어났죠. 그 아이에게는 이 작은 게토가

전 세계였습니다. 게토 밖으로 펼쳐진 엄청나게

큰 공간이 있는데도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게토가

전부였습니다.” Diskin 교수는 강의를 이어갔다.



“ 그래서 우리 어른들은 집을 위로 올렸습니다.

이층이 삼층이 되고, 삼층이 사층이 되고… 계속

위로 올렸습니다. 계속 올리다 보니 이십층이 되고

삼십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도 더 올릴 궁리만 했습니다.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세상이 넓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각국의 대도시에 있는 마천루, 즉 고층 빌딩의 원형은

게토에서 비좁게 살던 유태인들이 발명한 것이라고 한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유태인들이 발명했다기 보다는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 낸 고육지책이 아닐 까 한다.

옆으로 밀면 위로 올리는 발상의 전환이 만들어낸

작품이랄까.



그러나 옆으로 밀면 위로 올린다라는 발상의 전환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자만이 할 수 있다.처지를 비관하며 앉아서

한탄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원대한 계획을 짜는 마인드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긍정적인 생각 없이는

불가능하다. 핍박 속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대대로

전승했던 유태인들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강의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내 머리 속은

왠지 서울에 있는 63빌딩 생각으로 가득 찼다.

수많은 외침을 받은 우리 민족과 수없이 많은 박해를

받은 유태인들이 비슷하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아가

핍박 속에서 우리 민족이 만들어 놓은 발상의 전환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막힐 때 발상을 전환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이것 또한 글로벌 인재의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