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년 전 K그룹의 공채로 입사한 인사팀의 김대리와 박대리. 3개월 후 정기인사를 앞두고 과장으로 승진하고 싶은 두 사람은 그들의 직속 상사인 최부장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실적 쌓기에 여념이 없었다. 정기인사를 10일 앞둔 어느 날, 김대리가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순간 박대리와 최부장이 선술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김대리는 그 모습이 신경에 쓰이긴 했지만 일반 사적인 자리라 생각하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 최부장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 아닌가? 원래 최부장은 김대리에게 썩 호의적이지는 않았지만 아침에 인사를 했는데 얼굴도 쳐다보지 않은 것이 아닌가.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지?’ 라며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박대리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아…..’ . ‘박대리가 승진하기 위해 꽁수를 썼을 것 이다’라고 판단한 김대리는 박대리의 태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의심은 최부장의 HR팀의 회의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보름 후에 마무리 될 인사운영 계획서를 “왜 아직도 다 안했냐”는 것부터 “왜 일할 때 윗사람에게 과정을 보고하지 않았냐” 등 어이없는 핀잔을 하는 것이 아닌가… 회의를 마치고 김대리는 박대리에게 지금까지 일어난 상황의 원인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박대리는 대화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기인사 발표가 있는 날, 박대리는 과장으로 승진했으나 김대리는 승진은 고사하고 지방 사업소로 발령이 났다. 최부장과 박대리의 정치적 꽁수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한 김대리, 회사를 다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진다.


위 사례에서 등장한 사람 중 누구의 잘못일까? 그렇다 모두의 잘못이다. 인물별 잘못된 행동에 대해 살펴보자.


간혹 리더들은 자기 생각에 함몰되어 오류를 범할 수도 있고, 소수의 말만 믿고 잘못된 의사결정을 할 수도 있다. 최부장의 행동이 전형적인 예시이다. 최부장이 어떤 행동에 오류를 범했는지 요즘 변화되고 있는 리더십 패러다임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1990년대 호황기에는 기업제국을 건설한 CEO 1.0의 시대였다. 경험과 직관에 의해 의사결정하는 카리스마형 CEO는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반면,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서 국내에는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 국외에는 GE의 잭 웰치, 타임워너의 제럴드 레빈 등이 있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기술주 거품이 붕괴되고 엔론사의 회계부정 등 대형스캔들이 잇따라 터지자 2.0버전의 새로운 CEO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전임자들의 과잉 경영이나 실수를 교정하는 ‘문제해결’ 또는 ‘청소 전문가’의 임무를 띠었다. 최근 잇따라 사임한 씨티그룹의 찰스 프린스 회장과 메릴린치의 스탠리오닐 회장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2007년에 발생한 서버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초대형 모기지론 대부업체가 파산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에 신용경색을 불러온 연쇄적인 경제위기를 맞으며 조용히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2000년대 후반 감성적 리더십, 서번트 리더십의 등장으로 인해 조직원의 의견을 존중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CEO가 요구됨에 따라 카리스마형 CEO가 자연스럽게 퇴장하면서 겸손하면서 구성원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3.0버전의 조직친화형 CEO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 유형의 대표주자로는 제록스의 앤 멀케이, P&G의 앨런 라플리 등을 뽑을 수 있다. 특히, P&G의 앨런 라플리는 회사의 구내식당, 강당 어디에서든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고 이때, 항상 대화의 3분의 2를 듣는데 시간을 투자한다. 이를 통해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많은 사람들을 내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그가 CEO로 재임한 2000~2009년의 P&G는 매출은 2배, 수익은 무려 4배나 늘어났다. 제록스의 앤 멀케이는 24살에 영업사원으로 입사에 30년 동안 근무하면서 2000년 CEO로 내정되었다. 내정 당시 회사의 부채는 170억 달러에 육박했으며, 2000년까지 7분기 연속 적자 행진을 기록하고 있었다. 또한 현금보유액은 겨우 1억 5,500만 달러에 불과했으며, 주가는 산산조각이나 시가 총액의 90%가 증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CEO로 임명된 그녀는 2년 동안 주말에 한 번도 쉬지 않고 전 세계를 달려가 직원들과 소통에 소통을 반복한 리더십을 발휘한 덕분에 제록스는 다시 부활할 수 있었다.


1990년대 대표적인 CEO인 잭 웰치가 카리스마 리더십으로 현재의 기업을 경영한다면 과연 통할까? 같은 맥락으로 최부장이 박대리의 얘기만 듣고 폐쇄적인 소통리더십을 발휘해서는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 리더는 직원간 원활한 소통을 실현할 때 조직은 생명력을 얻게 된다. 즉, 리더는 우리라는 울타리에서 공정한 소통리더십을 발휘 했을 때 빛나는 것이다.


다음으로 박대리의 행동에 대해 살펴보자. 춘추전국시대 사공자의 첫째로 꼽히는 맹상군(孟嘗君)이라는 제후가 있었다. 그는 평소 인물을 아껴 빈객이 3,000명에 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제나라 재상 자리에서 쫓겨나자 빈객들이 모두 떠나고 말았다. 졸지에 외톨이 신세가 된 맹상군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은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풍환(馮驩)이라는 식객(食客)이었다. 그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신 적인 있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밀치면서 앞 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면 사람들은 더 이상 시장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는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사고 싶은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합집산(離合集散)은 세상의 이치이다. 대부분 현상들이 이 법칙을 따른다. 그러나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있다. 빈객들이 버리고 떠난 맹상군의 옆에는 풍환이라는 현명한 자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과장으로 승진한 박대리 곁에는 누가 남아 있을까? 그를 승진시킨 최부장일까? 모든 사람을 곁에 둘 수 는 없지만 조직 내에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신의를 보여주어야 한다. 풍환이 맹상군 옆에 남을 수 있었던 것도 맹산군의 신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의를 저버린 승진이나 성공은 단기간에는 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지만 장기간에는 달콤한 맛이 다해 화가 난 벌꿀의 침 맛을 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평소 달콤한 맛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신의의 정치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김대리의 행동에 대해 살펴보자. 한 사무실에서 두 사람이 다투고 있다. 한 사람은 바깥 창문을 열어놓기 원하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닫고 싶어 한다. 그들은 얼마만큼 창문을 열어 둘 것인지 다투고 있다. 어떤 해결책으로 두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 있을까?


잠시 후 두 사람의 상사가 들어오고, 그는 첫 직원에게 왜 창문을 열고 싶어 하는지 물었다. “사무실 공기가 탁해서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서요.”하고 그는 말했다. 상사는 또 다른 직원에게 왜 창을 닫고 싶어 하는지 물었다. 그는 “날씨가 너무 추워서 외풍을 막을려구요.”라고 대답했다. 상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옆 사무실과 통하는 창문을 활짝 열어서 외풍없이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과 부합하는 특정부분만 보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같은 그림이나 현상을 보아도 다르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속성 중 하나로서 많은 사람들이 외부 정보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인식이나 경험에 가까운 것이나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기억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김대리는 최부장과 박대리의 행동을 보고 자기만의 기준으로 해석을 했다. 즉, 김대리에게만 유리한 입장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오해와 문제의 폭은 더욱 커졌다. 물론 이 문제는 김대리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최부장 역시 김대리의 의견을 전혀 들어보지 않고 박대리의 목소리만 귀 기울였다.


이와 같은 갈등상황에서는 요구가 아니라 욕구에 초점을 맞추면 양쪽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다. 한 마디로 ‘요구’와 ‘욕구’를 구분하는 것이다. 누가 나에게 ‘코카콜라를 한 병 달라’고 했을 때 그것은 나에 대한 그 사람의 ‘요구’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은 그에게 어떤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요구란 목을 축여 갈증을 해소하고 싶다는 것으로, 커뮤니케이션 용어로 ‘포지션position’이라고 하고 욕구란 ‘인터레스트interest’라고 한다.


요구와 욕구를 구분한다는 것의 의미는 상대방의 요구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욕구, 즉 인터레스트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콜라를 달라고 하는데 만약 내게 콜라는 없고 대신 사이다는 있다고 하자. 내가 만일 상대방의 요구에 초점을 맞춘다면 “콜라 하나 주세요” 라는 요구에 대해 “콜라가 없는데요”라고 답하고 말 것이다. 그러면 거기서 대화는 단절되고 만다. 그러나 만일 내가 그의 ‘요구’가 아니라 그의 갈증이라는 ‘욕구’에 초점을 맞춘다면 나의 대답은 “콜라는 없어요. 그러나 사이다는 있는데요” 라고 말할 것이다. 이때는 상대방이 사이다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진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상대방이 가진 본래의 의도 및 욕구를 파악하는 능력은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기량 중의 하나이다.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상대방을 원하는 데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그들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해하는 동시에 욕구를 파악해야 한다.


상사의 페르소나가 되어라


김대리에게 아쉬운 점은 또 하나 있다. 승진은 한 번의 잘난 성과로 그 결과로 귀착되는 것이 아니다. 평소 상사와 얼마나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했는가도 매우 중요한 평가요인이다.


그리스 어원에 연극배우의 가면에 유래된 ‘페르소나(persona)’라는 말이 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사람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지며 여기서 그림자와 같은 페르소나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며 자아의 어두운 면이라고 말했다. 자아가 겉으로 드러난 의식의 영역을 통해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내면세계와 소통하는 주체라면, 페르소나는 일종의 가면으로 집단 사회의 행동 규범 또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페르소나는 종종 영화감독 자신의 분신이자 특정한 상징을 표현하는 배우를 지칭한다. 흔히 작가주의 영화감독들은 자신의 영화 세계를 대변할 수 있는 대역으로서 특정한 배우와 오랫동안 작업한다. 이때 배우는 작가의 페르소나가 된다. 작가의 속뜻을 잘 파악하고, 표현해 낼 줄 아는 배우를 일컬어 페르소나라고 한다. 페르소나는 배우에게 있어서 가장 영광스런 호칭이기도 하다.


행복한 직장생활을 하고자 한다면 상사의 페르소나가 되어야 한다. 자신을 믿고 일을 맡기는 상사가 있다는 것만큼 직장생활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하지만 상사와 이런 관계를 맺고 있는 직장인은 많지 않다. 페르소나는커녕 상사 때문에 회사에 등을 돌리는 직장인이 너무나 많다. 상사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머릿속에 ‘좋은 리더는 이러한 사람이다.’라는 자신만을 기준을 가지고 있다. 훌륭한 리더는 열린 소통을 하고, 부하직원에게 비전을 주며, 공통의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우리 상사는 그렇지 않다는 식이다. 하지만 불평만 한다고 상사와의 관계를 뒤집을 수는 없다. 오히려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적과의 동침을 발휘하는 기지를 발휘해야 한다. 그것의 출발점은 머릿속에 있는 이상적인 상사의 모습을 지우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자신을 상사에게 맞추는 방법을 깨우쳐야 한다. 상사에게 자신을 맞추는 행동은 아부나 아첨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상사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는 시금석이 된다. 핵심은 상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부하직원이 되는 것이다. 이는 완벽한 인간이 없듯 완벽한 상사도 없기 때문이다.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ijeong13@naver.com) / www.ggl.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