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트렌드를 대표했던 웰빙(Well-Being)이 가고 힐링이 대세이다. 어디가나 쉽게 힐링을 접한다. 힐링이 돈이 된다며 벌떼처럼 나방처럼 달려들어 우후죽순처럼 힐링사업도 생겨났다. 힐링푸드, 힐링스포츠, 힐링강좌, 대중매체에 힐링 프로그램까지 이를 부추기고 있다. 힘들고 아프고 멍듦에 위로해주고 치료해주고 보듬어 주는 힐링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그러나 웬지 나약하고 심약한 기분이 든다.

마치 나이가 든 기성세대에게 어울리는 듯한 느낌이다. 혈기 왕성하고 앞길 창창한 젊은이들에게도 힐링이 강조되어야 할까? 젊은 세대에게는 힐링 대세론이 거부 당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치유는 전혀 명분이 될 수 없다. 생활고에 학점고에 취업난까지 고민해야 하니 힐링이 맞는 것이라고? 아니다. 힐링이 거꾸로 그들을 주저앉히고 징징거리게 만든다.

필자가 어쩌다 학교강의를 나가면 희망과 비전을 잃은 학생들이 많아 안타깝다.일부 학생들은 스펙쌓기에만 급급하다. 취업을 할 때 또한 자신보다 회사의 비전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자기성취동기에 앞서 월급이 얼마냐를 따지고 있다. 어쩌다 잘 안되면 세상이 자신을 몰라본다며 푸념을 한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힐링은 문제 이전의 원점으로 돌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차라리 이들에게는 웰빙을 향해 열심히 뛰라고 가르쳐야 한다.

치고 나가지 못하고 편하게 안주하려는 속성은 힐링과 이웃사촌이다. 기성세대나 젊은 세대나 모두가 안정지향성 힐링을 부르짖는 다면 역동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반문해 본다. 아이들이 불쌍하다며 전전긍긍, 그저 감싸 안으려는 부모들의 책임도 크다.그러니까 캥거루족들이 늘어가는 것이다. 캥거루 주머니속에서 안주하며 응석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삶은 ‘굴절된 힐링’이 되어버린 오늘날 젊음의 자화상이다.

최소한 젊은날 만큼은 힐링을 벗어던져라

힐링은 최후의 수단이지 최선의 수단이 아니다. 개개인의 마음을 다스리는 힐링은 오랜 인생여정에서 상처받았을 때의 치유에만 해당된다. 팍팍한 삶에 지칠대로 지치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힐링이 필요한 것이다. 힐링이 필요한 상황까지 가지 않은 , 당장 힐링을 해야 할 만큼 상처가 심하지 않은 젊은이들은 힐링이전에 먼저 장작불처럼 훨훨 타올라야 한다. 그러다가 장작불이 좀 더 잘 타게 서로의 숨쉴 공간을 남겨주는 것이 힐링이다. 아무 때나 힐링 운운하며 움츠러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꿈많고 가능성 충만한 이들에게는 힐링은 예외 조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