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브랜드에 집착했을까?
(무역마케팅) 나는 왜 브랜드에 집착했을까?
1994년쯤일 거라고 기억이 된다. 파나마무역관에 있으면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 출장자를 돕는 일을 많이할 때였다. 그리고 그 때는 한국의 신발산업이 전 세계를 지배할 때였다. 그래서 당연히 한국 신발업체들도 중남미에 수출하고자 많은 출장자들이 파나마로 출장을 왔다. 참고로 파나마는 당시 전체 중남미 수출이 50억불이었다면 20억불은 조선업체들의 실적이었고, 나머지 30억불중 25억불정도는 파나마를 거쳐서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등 다른 중남미국가로 퍼지는 중계무역기지이다.



어느 날 부산에서 신발을 만드는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김과장이 중남미로 수출하고자 시장개척단과 함께 왔다. 그리고 나는 그와 함께 파나마에서 제법 크게 하는 신발중계 무역상 카를로스를 만나서 갔다. 김과장의 회사는 나이키나 아디다스등에 신발을 납품하는 곳으로 신발의 품질은 말 그대로 나이키. 아디다스였다. 그래서 난 당연히 카를로스가 그와 거래를 하고 싶어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카를로스가 하는 말은 ‘너네 신발이 나이키, 아디다스와 같은 것인 줄은 안다. 하지만 내 브랜드나 너네 브랜드가 아닌, 나이키, 아디다스 신발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짝퉁을 만들어 달라는 말이었다. 당시에는 나이키아디다스 신발의 모조품이 많이 돌아다녀서 지적 재산권에 대한 문제가 막 제기되고 있을 때였다. 김과장이 만든다면 모조품도 아니고, 정말 나이키아디다스 그 자체가 된다. 실제로 그 제품을 만드는 공장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또한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김과장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데다 양심상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김과장브랜드로 하면 (오래 전의 일이라 정확한 기억이 아니라서 대략 말하자면) U$10을 줄 수있지만, 짝퉁을 만들어주면 U$15을 주겠다고 하는 카를로스의 제안이었다. 품질은 딱 그만큼이 아니어도 좋으니 만들어달라고 오히려 사정을 하는 모습을 보니 기가 막혔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중국산 짝퉁도 들여오는 데 중국산에는 U$11정도를 주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자기는 딜러가 아니니까 그 신발을 만드는 곳도 알지만 유명 신발을 직접 구매하지는 못하고 있는 데 그걸 구할 수만 있으면 U$35정도에는 팔 수 있는 유통구조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 상담은 무산이 되었다.



이 일은 나에게 브랜드의 중요성을 실감시켰다. 그래도 정말로 나이키, 아디다스 신발을 만드는 제조업체에, 그 것도 순수하게 주문을 받아 만들기만 하는 OEM업체도 아니라, 디자인이나 소재까지 결정하여 매년 나이키 아디다스와 회의를 할 정도의 업체인데, 저 정도의 대접밖에 받지 못하는 것은 정말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수준을 가지고 있는 신발이 고작해야 중국산 짝퉁만도 못한 가격을 제시받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브랜드라는 게 뭔가? 신발에다 이름표 하나 다르게 붙인 것에 불과한데도 실제 시장가격은 대여섯배의 차이가 난다. 그러면서도 한쪽은 거들먹거리며 소비자들에게 큰 소리치며 팔지만, 한쪽은 오히려 사달라고 애원을 해도 본체만체 한다.



물론 마케팅 책을 보면 그래도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여러 가지의 가치들 때문에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있다고 한다. 그럼 브랜드를 구성하는 5가지 요소라는 것을 보자. 브랜드 네임, 심볼과 로고, 캐릭터, 슬로건, 패키지(포장). 어느 것하나 제품의 실질적인 가치를 높이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랜드가 브랜드로 인정을 받는 것은 이런 5가지 요소에 포함된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무엇’ 때문이다. 난 서양사람들은 한국사람처럼 사치나 허영이 아니라 무척이나 실용적이고 검소해서 그 ‘추상적인 무엇’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세상 사람들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한국사람, 미국사람, 남미사람이 다 ‘브랜드’라면 사족을 못쓰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아마 소비자를 불러놓고 김과장에게 ‘자기 네 제품은 실제로 나이키 아디다스를 만드는 제품입니다’라고 설명하고, 그 옆에서 내가 덧붙여서 ‘나는 한국의 정부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건 정말 한국의 나이키 아디다스 공장에서 나온 것이고, 모든 원부자재도 같고, 만드는 기술자도 같습니다. 가격은 절반입니다’라고 해도 소비자는 나이키 아디다스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 그 김과장과의 하루는 브랜드의 고귀함, 마케팅력이 주는 판매의 효율성, 감히 범접하지 못할만큼 높은 곳에서 경쟁자들을 내려다 보는 위엄, 이름없는 것들은 엄두도 못낼만큼 좋은 마진율 게다가 자기의 바이어까지 흔들어 댈 수 있는 자신감등 브랜드의 실질적인 힘을 그대로 보았다. 더불어 노브랜드의 서러움도. 그리고 멀지않은 뒷날에 부산의 신발산업은 나이키 아디다스가 저렴한 생산공장을 찾아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속절없이 쳐다보아야 하는 처참함을 다시한번 모든 이에게 ‘이름없음’의 비참함을 보여주었다.



이와는 반대로 당시에도 로만손시계, 카스저울, 777 손톱깍이등은 소기업이었지만, 자기네 이름아니면 팔지 않았다. 처음에는 별 대접을 받지 못했지만, 결국은 중남미 시장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으면서 장사를 할 정도로 브랜드를 갖게 되었다. 그 회사들은 출장자들의 때깔도 달랐다. 일단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그런 모습은 내 기억에 깊게 남았다. 그러다가 막상 내가 장사를 하다보니 그 이름의 있고 없음의 차이를 옆에서가 아닌, 내 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자동차부품, 방탄복, 화장품기계등등을 거치다가 발가락양말이라는 나의 제품을 갖게 되자 마자 난 브랜드를 갖고자했고, ‘필맥스’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것을 바탕으로 더 큰 곳으로 가고자 10년을 넘게 지지고 볶고 있다.



사진 : http://blog.daum.net/kipsmc/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