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대하여
(딸에게 보내는 경제편지)






가족에 대하여
아빠는 살면서 참 운이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우선 시험 운이 좋은 것같아. 실력에 비하여 항상 높은 곳을 시험을 치고 남들은 다 떨어질 거라는 데, 괜찮은 성적으로 붙거든. 그리고 사람 운도 좋아. 내 주위에는 일단 사기하거나 당한 사람이 없고, 나쁜 사람이 없어.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운은 가족을 잘 만났어. 할머니,할아버지, 엄마, 그리고 너희들. 그래서 아빠는 항상 행복하, 너희들에게 고마워해.



다음은 프랑크 쉬르마러가 지은 ‘가족 부활이냐, 몰락이냐’라는 책에 나오는 일화야.

1973년 영국의 휴양지인 맨섬에 소재한 섬머랜드호텔에서 불이 났다. 이 중에는 가족과 온 사람들도 있고, 친구들과 온 사람들도 있었다. 일단 불이 나자 가족들과 온 사람들은 혼란의 와중에서도 서로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심지어 건물 반대편으로 달려간 사람들도 많았으니 어떤 희생도 각오했던 것이다. 화재 순간 대형 야외 정원에 흩어져 있던 30가족중 절반이 가족을 찾아 헤맸고, 실제로 가족을 찾았다. 그리고 전원이 무사히 건물을 빠져나왔다.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은 어땠을까? 화재 발생시점에 흩어져 놀고 있던 19팀 중에서 탈출하기 전 서로를 찾아 헤맨 경우는 단 한 팀도 없었다. 화재가 발생하기 전에는 가족보다 더 진한 애정을 과시했지만, 사건이 터지자 순식간에 그 애정의 끈은 끊어져 버렸다. 친구들은 사방으로 흩어진 고독한 전사가 되었고, 가족은 번개같은 속도로 정렬한 구조대가 되었다. 이 사건의 조사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결과로 미루어 보건대 가망없는 상황, 즉 패닉이론에 따르자면 모든 심리적 결합의 완벽한 붕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절반의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73%가 한 사람 혹은 그 이상의 그룹 성원과 함께 탈출할 수있었고, 이들 그룹 성원의 다수가 가족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가족 구성원은 다른 가족으로부터 자신은 절대 버림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가족이 이성을 잃지 않을 수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가족이란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뿐더러, 목숨을 좌우하는 순간에도 살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로 가족을 꼽는 게 일반적이지. 그래서 난 요즘들어 자주 들리는 ‘대안적 가족’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요즘 신문이나 언론을 보면 자주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결혼을 하고자 하는 젊은 사람들이 줄어든다고, 그러면서 가족이 줄어드는 것을 고민하기 보다는 새로운 대체 가족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인터넷을 통한 공동체같은 것 말이다. 난 그런 게 정말 가족의 대안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것이야 말로 가족에 대한 몰상식이라고 생각해. 그들은 줄어드는 가족과의 관계를 온-오프라인을 통하여 만난 사람들 간에 이루어진 갖가지 ‘공동체’가 대신할 수있을 것이라고 말해. 그건 아마도 가족간의 갈등관계에 너무 심취한 사람들이 이야기라고 생각해. 하지만 세상에는 갈등관계에 있는 가족보다는 서로를 보살펴주고, 같이 즐거워하며 어려울 때 도와주는 가족들이 훨씬 일반적이지. 실제로 우리는 친족관계와 친구나 의붓 친족관계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알고 있어. 친구과 의붓 친족관계는 결국 머리굴려 고민한 주고받기의 대차대조표를 제시해야 해. 이 걸 진화심리학은 ‘상호협력’이라고 부르지. 반면 친족관계에서는 주고받기의 불균형이 허용되. 그러니까 누구는 계속 받기만 하고, 누구는 계속 주기만 하는 관계가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거지. 그 대표적인 예가 부모님의 사랑이잖아. 물론 친족 간에도 한쪽에서 계속 도움만 주다보면 불만이 있을 수있지만, 그래도 ‘내가 너에게 100을 주었으니 너도 나에게 100을 달라’는 관계가 아니라 ‘그래도 최소한 10은 주어야 하지 않겠냐?’는 정도이지. 물론 그게 물질적인 것인 경우에 그렇고 감정이나 마음을 그만큼 달라는 것은 아니지. 이처럼 상호 교환의 불균형이 일생동안 인정되는 관계는 친족관계뿐이야. 위의 일화처럼 심지어는 목숨마저 던져주는 게 가족이잖아.



그런데 사회는 자꾸만 가족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어. 그러면서 가족이 메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정부의 복지정책이 채워주어야 한다고 하지. 그런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많은 사람들이 북구 유럽식의 안정된 노후를 보장해주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부르짖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자기가 버는 소득의 거의 50%, 많이 버는 사람은 그 이상도 내왔어. 그 것도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생기기 전부터, 그게 거의 100년은 된 나라들이지. 지금 당장부터 소득세율을 50%로 늘린다고 해도 우리나라는 이미 불가능해. 게다가 북유럽, 아빠가 자주 가는 핀란드만해도 사람들이 되게 외로워해. 복지정책덕분에 굶지는 않지만, 노인들이 단둘이 살며 멀리 떠나버린 자식들을 그리워하면서 말이야. 그건 어떤 금전적인 것으로도 해결이 안되는 거잖아.



다시 그 책을 인용해볼게.

“사람들은 가족, 친구, 이웃, 공동체, 노인과 어린이의 모습을 한 사회 조직 형태를 더 이상바라지 않는다. 식량과 옷, 집은 물론 휴식, 오락, 안전, 노인과 어린이, 병자, 장애인의 보호까지도 시장을 통해 해결한다. 이제 곧 사회의 물질 및 서비스 욕구는 물론 인생 사이클의 모든 감성적 현상까지도 시장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정부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시장으로 가자고? 그럼 시장에서 나의 외로움을 달래줄 서비스를 사려면 얼마나 들까? 무지하게 비싸거나, 무지하게 돈이 많이 있어야 할꺼야. 그래서 저자는 다시 말하지.

“공동체를 가장 깊은 내면에서 결속시키는 것은 시장이나 국가가 할 수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급선무이다. 부모와 자식이라면 돈이나 인정을 받지 못해도 하는 행동, 너무나 당연하기에 훈장도 사회보험도 필요치 않은 행동,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부족한 자산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높은 가격을 지불할 그 당연함! 그 것이야 말로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힘이다. 우리가 남길 수있는 진정한 유산은 가족이 서로에게하는 행동이 만인을 위한 행동이라는 깨달음이다.” 그러니까 시장이나 정부는 결코 가족의 진정한 역할을 대체할 수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족관계의 가장 큰 혜택을 입는 사람은 아마도 그 가족의 ‘막내’이기가 가장 확률이 높을 것같다. 막내는 무엇을 잘못하면 위의 누나.형들이 도와줄 것이지만, 잘해도 윗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할 의무를 별로 느끼지 않지. 막내니까!



우리 집에서도 항상 막내가 문제라는 걸 너희도 알지. 녀석은 주기적으로 온 가족들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주잖아. 한때는 빨간 마후라 조종사가 되겠다고 그러다가, 자동차부품으로 중남미를 정복하겠다고 하더니, 발가락양말로 유럽시장을 석권하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사람들에게 신발같지 않은 필맥스 (Feelmax) 맨발신발을 신으라고 하고 있잖아. 그럴 때마다 우리 부모와 형제들은 막내보다 더 고민하기 시작하고, 그리고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애를 쓰고. 아마 가족들의 이런 애정이 없었다면 녀석은 벌써 여러 번의 실패와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재기를 위한 노력은 꿈도 꾸지 못하였을 것이야. 아마 집안에서는 잘되면 나중에 떡이라도 사주겠지 하는 마음과, 그래 저 정도의 말썽피는 놈이 하나쯤은 있어야지 형노릇, 누나노릇하는 재미도 있지 하는 마음으로 아슬아슬하게 막내를 쳐다보고 있고. 다행히도 막내는 잘생긴 외모와 세련된 말투에도 불구하고 집안을 혼란하게 할 만한 말썽은 피우지 않고 있아서, 모두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요즘 경제가 위기라고 하는 데, 막내가 하는 일이 어서 빨리 잘 풀렸으면 하는 게 형제들의 마음이야.



‘인간은 인간에게 불행을 물려준다’?. 인간은 출산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불행을 건네준다며,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이 않는 데, 하지만 불행만 물려주는 게 아니라, 가족간의 사랑이나 행복 또한 물려준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모르겠어. 그리고 그 가족간의 관계가 결국은 사회 전체를 향한 이타심의 발로이고. 그런 면에서 우리 집의 막내는 아마 나중에 잘되면 사회에 대한 이타심을 충분히 발휘할 것이라고 우리 식구들은 믿어 의심치 않고 있지.



우리 집의 말썽꾸러기 막내는 ‘홍재화’라고 하는 사람인 것, 알지. 너희 엄마의 막내는 할머니의 막내보다는 훨씬 나을 거야. 그래도 너희가 잘 해줘, 너무 윽박지르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