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갈등에 대하여
(딸에게 보내는 경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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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갈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아빠는 요즘의 세대에 대하여 미안하고 안되었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든다. 어떤 면으로 보든 너희 세대는 분명히 아빠의 세대보다는 더 힘이 들게 현재를 이끌어가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제까지는 그래도 우리 세대가 너희 세대의 삶을 많이 책임지어주었지만, 앞으로 너희가 우리 세대를 책임을 질려니 과거와 많이 다르니까 더욱 힘들어 질 것이라는 예측들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간의 갈등이 깊어질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고.



세대갈등이란 말이 아마 근래에 들어 처음나온 것같아. 누가 말하기를 소크라테스도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어 큰 일이야!’라고 혀를 찼다지만 그건 아래 세대가 윗 세대에 대들었다기보다는, 아래세대가 아직 철이 들지 않아서 걱정이라는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전보다는 확실이 윗세대에 대한 존경심도 줄었거니와 반항심도 많이 커졌지. 왜 그럴까?



내가 보기에는 대략 세가지 정도, 1) 지식의 급격한 변화 : 인터넷등으로 인한 급격한 변화의 일상화로 이전의 지식이 현재나 미래에도 사용될 가능성이 매우 줄었기 때문에 농경시대에 쓰이던 ‘노인의 지혜’라는 말이 의미가 많이 축소되었지. 그러니까 예전에는 노인에 맑은 날에 ‘음, 내일은 비가 올것같아!’하면 젊은 사람은 콧방귀를 끼다가 정말 비가 오면 놀라면서 ‘역시 노인들은 지혜로와!’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같게 되지. 하지만 이제는 10년전의 지식도 무용지물이 되는 세상이니 노인의 지혜란 말이 옛날같지 않지. 2) 경제규모의 축소 : 할아버지 세대는 전쟁을 겪어서 큰 어려움이 있엇지만, 그래도 인류의 역사는 꾸준한 발전과 성장의 역사였지. 그런데 하필 요즘은 경제규모가 오히려 축소되어가고 있어. 미국의 경우는 실질소득이 이미 1980년대 이후로는 정체되었고, 한국도 많은 사람들이 1997년 IMF 이전을 경제생활의 정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물론 최근의 통계까지도 한국의 실질소득이 늘어난 것처럼 말하지만,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실질소득의 증가분이 고소득층으로 가고, 가계 부채의 증가분을 생각하면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소득과 통계상의 차이가 많이 나지. 게다가 세계적인 금융위기, 석유가격등의 상승은 명목상의 통계치마저 줄어가고 있는 실정이야. 그러니까 세계 경제 성장률이 과거에는 4-5%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고, 한국은 보통 7-8%정도는 되야한다고 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대다수의 나라가 마이너스 성장만 아니라면 성공적인 한해였다고 여길 정도가 되었어. 3) 소통수단의 이질화 :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단이 많이 늘어서 젊은 층을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핸드폰 문자...... 등등이 있지만, 그건 젊은 층만의 소통수단이지 모든 계층이 같이 사용하는 수단은 아니야. 의사소통의 방법이 매우 다르게 되니, 세대간의 대화가 원활하게 이루어 질 리가 없지.



그러니까 위 세가지를 한마디로 줄이면 잘 알지도, 잘 먹여주지도 못하면서 말마저 통하지 않는 게 요즘의 세대갈등의 원인이라고 봐. 그리고 그 세대갈등을 상징하는 말로 ‘88만원 세대’라는 말이지. 88만원 세대란 요즘의 20대와 30대 초년생쯤을 일컫는 말이지. 우석훈교수가 쓴 ‘88만원 세대’라는 말에서 유래되어 이제는 일상화된 말이야. 우리 딸들은 이 책을 읽은 것같지는 않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고 있을 것라고 생각해.



이 책의 주된 내용은 ‘현재의 20대가 불쌍하다. 그런데 그들은 한국내에서 고착된 세대간의 경쟁으로 말미암아 나갈 곳이 없이 착취를 당하게 되어있다. 대충 계산해보니 20대들의 평균 월급은 88만원. 희망이 없다. 짱돌이라도 들어야 한다’는 식이다. 기성세대는 이미 모든 것을 가졌고 심지어는 청년층이 가져야할 것까지 몰염치하게 독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질곡을 빠져나오기 위하여는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하여 더 많은 것을 양보하는 해야 한다고 한다는 내용이지.



그런데 이 책은 기성세대는 나쁘고, 20대는 불쌍하다는 단순구도야! 세대간의 경쟁과 88만원 세대의 불쌍함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마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경영자가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말을 기성세대와 20대로만 바꾸어 놓으면 같은 말을 듣는 착각이 들지. 20대에 대한 지원은 기성세대의 것을 빼앗아 오는 것으로 되어있는 데, 그 부분을 읽을 때에는 ‘아랫돌을 빼어내 위에다 고인다’는 말이 생각난다. 잠시 본문을 인용해보면, “사회 특히 기성세대가 자신들을 지키는 바리케이드를 20대와 공유하지 않으려고 하는 현 시점, 20대도 어떤 식으로든지 더 사회적이고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가지려고 할 필요가 있고, 그들의 요구가 조금이라도 새로운 반전의 계기를 찾을 수 있도록 작은 ‘짱돌’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내가 이해하는 ‘짱돌’이란 20대가 키워가야 할 사회적 능력, 창조적 생각, 일에 대한 열정같은 것은 아닌, 20대가 모두 모여 기성세대(40-50대, 정부, 기업등등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는 모든 조직을 포함)에 대항할 수있는 어떤 정치적 수단이야. 그런데 문제는 짱돌을 던질 만한 곳은 다 한국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해결책이지. 현재 20대들이 갖는 불행은 모두 한국의 기성세대 때문이라는 분석이지만, 사실 88만원세대와 같은 ‘청년실업’은 거의 전 세계적인 문제이거든. 그럼 한국의 기성세대가 전 세계적인 ‘청년실업’에 대하여 책임이 있나? 실업과 비정규직의 증가는 단순업무를 기계로 전환시키는 기계화, 관리업무를 전산화시킨 정보화, 모든 업무를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아웃소싱할 수있는 세계화,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진출로 인한 노동력 공급과잉 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지구촌의 보편화 현상이야. 이러한 다양한 현상을 무시하고 현재의 불행을 세대간의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은 청년세대를 근시안적 세대로 만들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힘들어져 가는 사회 전체를 갈등의 분위기로 몰아갈 위험이 있어. 기성세대가 청년세대를 착취하여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게, 기성세대의 생존노력은 결국 그들의 자식을 잘먹이고 잘살게 하기 위함이지, 본인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없지. 만일 기성세대에게 부모님이나 처자식같은 가족이 없다면 산속이나 수도원에 들어가서 사는 수도승이 되고 싶거나,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아. 그런데 그 걸 갈등으로 부추키면 전혀 생산적이지 않지.



우리의 다음 세대는 ‘짱돌’을 던지라고 소리치는 선배보다는, 그들에게 ‘오랫동안 해야할 일거리가 늘었으니 같이 일하자’고 손을 내미는 선배가 더욱 더 절실하게 필요해. 사실 너희들의 고생을 가장 가슴아파하는 사람도 바로 우리 세대이지.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을 우리 세대는 모두 갖고 있단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세대간의 갈등’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나, 어떻게 하다가 자식들에게 이렇게 미안하게 되었는 지 우리도 어리벙벙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세대간의 갈등이라는 말보다는, ‘세대간의 화합을 통한 발전’이라는 말을 더 들었으면 하는 게 우리 세대의 마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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