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서 눈을 감을 때까지 한 순간도 ‘갈등’을 경험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갈등은 타인과의 갈등도 있지만 ‘자신과의 갈등’도 있다. 갈등을 왜면하거나 무시하거나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방치하는 것과도 같다. 갈등은 인간을 성숙시키는 필수조건이다. 갈등은 또 다른 의미로 선택이다. 할건지 말건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 왜 하는지 등 이 모든 것들은 갈등의 재료가 된다.

특히 우리는 자신과의 갈등보다 ‘관계’ 에서 더 많은 갈등을 경험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갈등관계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에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장애는 언제나 ‘수용’의 문제다. 수용이 어려운 이유는 자신 내부의 ‘분노’가 원인이지만 원활한 관계를 원한다면 먼저, 타인의 오류에 대한 너그러운 이해와 수용이 필요하다. 또한 자신에 대한 수용이다. 이러한 갈등을 일으킨 자신의 판단이나 대처에 대한 오류를 인정해야 한다. 이 두 생각은 이성적이 생각에 의한 장애다.

이 문제보다 더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갈등의 주 원인이 되는 ‘감정’의 문제다. 감정은 마치 장작을 태우는 것과 같이 처음에는 미미 하다가 불이 붙으면 겉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간다. 그러다가 설령 갈등 상황이 종료 되었다 하더라도 타고 남은 연기와 같아서 가만히 두면 서서히 가라앉지만 그 매쾌한 냄새가 없어지기까지는 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과 같이 불편한 감정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이러한 갈등상황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먼저 감정적 분노 수위를 떨어뜨리는 것이 필요하다. 감정은 이성을 마비시켜서 자신이 의도한 방향(이성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자신의 감정의 분노 수위가 내려갔다고 판단되면 상대와의 접촉(대면 혹은 전화)을 시도를 하라.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의 분노의 말을 전적으로 수용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유는 상대는 아직 분노수위의 정점에 있을 수 있으며, 자신의 노력만큼 감정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번째. 상대의 분노를 모두 수용하고 긍정해 주었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갈등기간동안 혹은 갈둥 시점에 있었던 상황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나 분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라. 이때 상대는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수용적인 태도를 보이며 서로의 실수에 대해 반성하게 될 것이고 반드시 다음 약속을 받아 낼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자신이 매우 성급하게 결론을 얻어내려고 했거나, 상대의 분노에 대한 적극적인 긍정이나 수용적 표현이 부족했을 확률이 아주 높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또한 인간은 불완전 하다. 그러므로 갈등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당연한 현상이다. 갈등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은 물론 타인도 있는 그래로 인정하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