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창가를 스쳐가고, 새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걸음을
바쁘게 만들고 있다. 처음 컴퓨터를 보고 반해서 공부한 지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구나” 라는 느낌
속에서, 오늘도 남들이 노는 휴일에 나와서 프로그램을 짜고 있는 나의 모습이 비맞은 유리창에 슬프게
비쳐지는 것을 보고

있다







어느덧 흔해져서

주변의 누구나 한마디씩 하는 IT에 대한 많은 이야기 중에서 “이제는 3D 업종의 하나다”
라는 말이나, “보도

블럭을 까는 것보다 더 싼 인건비를 받는 직업”이라는 말들의 암담함보다, 가장으로서
아이들에게 좀더 신경 써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가는 시간과 함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오늘 날
우리나라가 가지는 IT 강국의 이미지 속에 나와 많은 동료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다고 한편으로 위안을
삼아 본다.




이제 프로그램

제작할 사람도 없고, 모두가 기피하는 분야가 되어 버린 분위기 속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나의 친구들을

바라보면서 저들이 있었기에 한국의 IT가 발전하고,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으로
성장하였다는 것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신문에 나오는

반도체나 아이폰, 게임의 화려한 이야기, TV에 나오는 수많은

성공 신화가 있지만,
사용자들이 실제 사용하는 버스카드, 교통신호, 철도신호, 은행/계정관리, 슈퍼영업관리, 생산라인 관리,
재고관리, 영업관리 등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휴일을 반납하고 묵묵히 일하는 IT 엔지니어들에

의해
개발되고 운영되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것은 마치, 서울 시민들이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는 지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IT개발자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거나, 새로운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의미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오늘도 휴일을 반납하고 자신의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많은 IT 개발자들의

노력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들은 자신의 업무 수행을 아이들의
졸업식이나, 친구와의 모임 보다 더 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자신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받게 될
불편을 걱정하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오늘의 한국 사회를 바라보며,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아도 충분히

대우받으며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어느 날 동창회에 고급차를 몰고 나와서 “야, 왜 그렇게 힘들게 살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설 때,
느끼는 설움 속에서도, 나는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최후의 자존심만이 나를 지키고 있음을,
나의 친구와 동료를 지키고 있음을, 이 사회를 이끄는 누군가는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대단한 관심은 아니어도, 사회의 지도자들이 진실 어린 마음으로 소신

있게 일하는 사람들을 돌아볼 때,
우리 사회는 좀더 아름답고 성숙해 질 것이라 믿는다. 사회를 위하여 스스로 자기를 희생하는 많은 삶들이
후회와 연민 보다는 보람을 얻는 시간이 오기를 바란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나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밤을 새며 일할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 조차 이해해 주지 않는 삶이라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