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재해석 (10)  - 걸어서 좋은 정신적 이유

“분노를 다스리거나 용서를 하기 위해서도 걷기를 활용할 수 있다. 걷기가 현실을 기반으로 생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우의 마흔넘어 걷기 여행 중에서)

“언제까지나 안정적이고 확실한 삶을 살 것이라 믿었던 책의 저자 크리스티네는 갑작스레 모든 것을 잃게 되자 미국 서부를 횡단하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을 걷기로 마음먹는다.” (크리스티네 튀르머의 생이 보일 때까지 걷기 중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나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나는 걷기로 했다. “나는 누구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 대학을 졸업하고 어른의 삶을 시작해야 했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걷기로 했다.” (앤드루 포스소펠의 나는 걷기로 했다 중에서)

사람은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기분좋게 올 때도 있고, 정말로 피끊는 안타까움, 분노, 아쉬움을 동반하면서 올 때도 있다. 그때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탈출구를 찾는다. 그 중에서 하나가 ‘걷기’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온갖 감정과 생각을 억누르지 못해 몸을 움직여 화산같은 몸과 마음의 열기를 마구 방출하기 위하여 걷는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다 돌았다느니, 미국 대륙을 횡단했다느니, 세계를 한 바퀴 반 돌았다느니 하는 책들이 여러 권 있다. 머리 끝에서 일어난 일을 발 끝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 것 보면 사람 몸은 온 몸의 세포가 다른 온 몸의 세포와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상호 작용한다는 게 맞는 말이다. 그런데 발로 걷는데 머리가 시원해지는 이유는 뭘까?

발이 움직이면 머리가 한가해진다

발이 한가하면 온 몸의 에너지는 쓸 데가 줄어든다. 그런데 생각거리가 많아지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머리가 바빠진다. 온갖 상상이 머리에 맴돈다. 저 지옥 밑바닥에서부터 우주 저편 건너까지 갔다 오고도 남을 생각을 한다. 화나게 한 사람이 미워진다. 설마 설마하다가도, 그럼 그렇지 하는 이유를 기어코 찾아내고야 마는 게 사람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긍정보다는 부정, 안락함보다는 위험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결론은 부정적이고 불안한 방향으로 이끌려 간다. 이럴 때 걸어보자. 그럼 확실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 지옥까지 갈 생각이 우선 땅위에 머물면서 길에 웅덩이는 없는지, 돌멩이는 없는지, 앞에 오는 사람과 부딪치지는 않는 지를 살펴 걷게 된다. 우주 저 편너머까지 날라 다니던 상상력은 자외선에 얼굴타지 말라고 햇볕을 가리고, 비맞지 않게 우산으로 하늘을 가리고 걷게 된다. 그렇게 하늘가리고 땅 바닥을 염려하며 걷다보면 관념은 허공에서 현실로, 암울한 지하에서 밝은 빛이 비추는 지상으로 돌아온다.

걷다 보면 긴장이 풀어진다

현대인은 늘 긴장하면서 산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인터넷 이전과 인터넷 이후로 나누어 긴장도가 훨씬 높아졌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적을 만나면 긴장하게 되어 있는데, 인터넷 이전에는 적이 보일 때 긴장하였지만, 인터넷 이후에는 보이지 않는 인터넷 속의 적으로 인하여 항상 두려움에 떨며 살아야 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나같은 신발 장사도 내 적은 인터넷 속에 있다. 온라인 마켓에는 내 맨발신발과 비슷한 모양을 갖고 있는 온 세계의 신발이 다 드러나 있다. 온라인이 없을 때는 나는 그저 우리 동네에 있는 보문시장이나 돈암시장의 신발가게만 신경쓰면 되었다. 굳이 동대문시장도 가볼 필요가 없고, 더 멀리 있는 남대문시장은 내 경쟁상대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중국 신발 사이트는 물론이고 아마존, 이베이는 물론이고 유럽, 동남아의 사이트까지, 한국어는 물론이고 영어로 된 사이트라면 실시간으로 내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다가 나의 독창성이란 아주 짧은 기간만 유효하고, 언제든지 복제가 가능하고 짝퉁이 나올 수있고, 나 또한 남의 디자인을 조금 변경해서 내 사이트에 올려 놓을 수 있다. 창작과 해적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고, 순간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기에 언제든지 나는 파키스탄이나 에디오피아의 경쟁자에 의해 대체될 수있다는 두려움에 떨며 산다. 그러나 걷는 순간에는 내가 해야 할 일, 안전하게 걷는 일이 눈에 보인다. 안전하게 걷는 것에 비하면 보이지 않는 적은 상대적으로 멀리 있는 위험이다. 상상의 적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그러니 느긋해진다.

마음이 자유로워진다

긴장이 풀어지면 사람이 여유가 있게 되고 관용을 베풀 여지가 생긴다. 머리 속이 복잡하고 긴장해 있을 때는 정몽주의 18번 노래였던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도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는 생각 뿐이게 된다. 그렇지만 걸으면서 마음이 느긋해지고 이런 저런 일들이 있을 만하다는 공간이 생긴다. 그러면 고려 말에 이방원이 즐겨 불렀던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우리도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져 사는 거라는 다양함을 고려할 수 있게 된다. 걷자, 그러다 보면 미운 사람에게도 사정이 있으려니 하는 관대함이 생겨나고, 그럴 수는 없다는 억울함도 혹시나 내 잘못은 아닌가 하는 반성이 생긴다. 좁은 공간에서는 답답한 마음만 생기고 생각을 정리할 수가 없다. 밖에 나가 발을 자유롭게 움직이면 머리도 자유로워지고, 그러다 보면 마음도 자유로워져서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이건 상당히 의학적 근거가 있는 말이다. 걸으면 뇌의 산소 공급이 많아지고, 우울증과 신경과민을 촉발하는 좋지 않은 활성 산소을 줄여준다. 전문용어로는 ‘산화 스트레스’라고 하는데, 이 산화 스트레스의 천적은 바로 적당히 빠른 속도로 하루 30정도 걷는 습관이라고 한다. 미국 코네티컷대학교 연구팀은 건강한 성인 419명을 대상으로 운동 강도와 삶의 질 간의 관계를 조사했다. 이 연구팀은 운동 강도와 정신건강 사이의 연관성을 측정하였다. 그 결과 주로 앉아서만 생활하는 사람은 신체건강과 더불어 정신건강도 가장 낮았다. 15~20분 정도 즐기는 산책 역시 심리적 행복의 수준을 높이고 우울감을 낮추는 효과가 컸다.

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이다. 스트레스가 없는 삶도 사실 재미없다. 따라서 스트레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이어녕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우리 한민족은 뭐든지 풀어내는 민족이라고 했다. 한을 풀고, 기분풀고, 스트레스도 푼다고 했다. 풀다 풀다 풀 게 없는 심심함마저 땅콩으로 풀어내는 게 우리 민족이다.

땅콩 한 주먹 주머니에 넣고, 길을 걸으면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심심함마저 풀어진다. 걷다 보면 내 혼 줄을 빼앗아 가는 것들을 되새겨 볼 수 있다. 그리고 정신줄을 다시 잡아당길 정신력이 생긴다.

홍재화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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